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신의 높이 277㎝, 너비 149㎝, 두께 17㎝, 글자 크기 약 2㎝. 1111년(예종 6)에 세워졌다.
현재 비수(碑首)는 유실되었고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서자(書者)와 찬자(纂者)의 이름은 판독할 수 없고 각자(刻者)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의하면 이오가 짓고 정윤(鄭允)이 썼으며 비음(碑陰)은 채추탄(蔡推誕)이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조선금석고』에는 채추탄이 쓴 것으로 밝히고 있다. 혜덕(慧德)과 탑호인 진응(眞應)은 시호이며, 속성은 이씨이고 경원인이다.
비문에는 왕사의 생애 · 행적, 그리고 덕을 기리는 내용이 실려 있고 글씨는 구양순법(歐陽詢法)의 해서로 썼는데 구양순 글씨보다 더욱 활달하여 쾌적한 맛이 있으며, 필력도 주경하며 결구의 묘를 다하고 있다. 신라나 조선시대에 비하여 고려의 글씨가 훨씬 뛰어남을 보여주는 명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