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은 선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기의 본래면목을 참구하는 불교 수행법이다. 참선은 특정한 대상에 대한 집중에서 오는 마음의 고요함을 의미한다. 또한 참선은 일상에서의 활발한 지혜를 드러낸다는 의미도 있다. 그리고 간화선에서 자기의 본래면목을 구하는 수행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 본래면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구하는 것은 궁극적인 인간의 마음자리 즉 본성에 초점을 맞춘 깨달음의 공부이다. 최근에 마음의 평화를 원하는 일반 대중은 명상이란 용어를 선호한다.
참선(參禪)과 선(禪)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선이 마음의 어떤 특정한 상태를 말한다면, 참선이라고 했을 때는 마음의 그 특정한 상태, 곧 자기의 본성을 참구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오늘날 참선이란 용어는 간화선(看話禪)에서 주로 사용하지만 시대나 문맥에 따라서 뜻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천하여 왔다. 일상에서 참선이란 말은 궁극적인 진리를 탐구하는 종교적인 실천 수행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선’이란 말은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에, 그것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전후 맥락을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선에서 ‘선’이란 용어의 원류는 팔리어 ‘Jhana’, 범어 ‘Dhyana’이다. 이것을 선나(禪那)로 음역하고 축약하여 ‘선’이라 한 것이다. 선은 고요함과 같은 마음 상태를 말하는데, 영어로는 ‘meditation’이나 ‘contemplation’이란 용어로 번역하여 사용한다. 이것을 한글로 번역하여 ‘명상’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선의 일본식 발음 zen을 사용하여 ‘zen meditation’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간화선의 경우는 ‘hwadu meditation(화두명상)’이라고 번역한다.
참선이란 용어는 오랜 역사 속에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뜻이 변천되어 왔다. 첫째, 참선이란 혼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는 선정(禪定)의 의미를 지칭한다. 이것은 선이란 용어의 어원에 충실한 관점이다. 선이란 용어는 주지하다시피 원어가 jhana(팔리어), dhyana(범어)이다. 이것은 음역하여 선나로, 의역하여 고요할 정(定)으로 번역한다. 곧 특정한 대상에 대한 집중에서 오는 마음의 고요함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참선이란 마음의 고요함, 곧 선정에 든다는 의미이다.
둘째, 참선이란 단순히 고요함에 들어간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활발한 지혜를 드러낸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화엄교학과 선종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했던 송나라 승려 종밀(宗密; 780~841)은 전통 강원의 교재이기도 한 『법집별행록절요(法集別行錄節要)』에서 선(禪)을 ‘선정과 지혜의 통칭’이라고 정의 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참선은 단순하게 선정만을 의미하지 않고, 지혜의 작용을 포함한다. 참선 공부를 한다는 말은 새의 양 날개처럼 선정뿐만 아니라, 지혜를 함께 닦는 것을 말한다. 정혜쌍수(定慧雙修)나 성성적적(惺惺寂寂)이란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선이란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서, 고요한 가운데 깨어있고, 깨어있는 가운데 적적하다는 것이다.
셋째, 참선이란 주로 간화선에서 화두, 곧 ‘무엇이 나인가?’와 같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참구하는 수행법을 지칭한다. 이때는 몸과 마음보다는 제3의 관점인 인간의 본성, 본래면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참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요함과 지혜와 같은 특별한 마음 현상[別境心所]을 중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궁극적인 인간의 마음자리[心地], 본성에 초점을 맞춘 점에서 참선은 깨달음의 공부법이다. 이것이 동북아시아에서 참선이라고 했을 때 가장 적절한 의미이다.
오늘날 참선과 명상이란 용어가 함께 사용되어 혼란을 주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명상에는 본성에 대한 참구가 없기에 낮은 단계라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참선은 전문 수행자들만을 위한 고원한 상태를 추구한다고 비판한다. 참선과 명상은 서로 호불호에 따라서 갈등하고 서로 논쟁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음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전문 수행자들은 참선이란 용어를 더 선호하고, 마음의 평화를 원하는 일반 대중은 근래에 명상이란 용어를 훨씬 더 잘 사용한다.
국어사전에서는 명상을 ‘눈을 감고 차분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차분한 마음’으로는 첫 번째 선정의 의미와 연결되고, ‘깊이 생각함’은 두 번째 지혜의 작용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정의라면 세 번째에서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나, 영적 본질을 담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참선과 명상은 확연하게 다른 용어라고 해서, 이들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간화선의 경우도 참선이란 동일한 어원 ‘선나’에 기반하고 있기에 ‘명상’의 범주와 다르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간의 건강을 몸, 마음, 성품(영성), 사회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명상이 인간의 건강에 기여하는 좋은 도구라는 점에서, 성품을 참구하는 참선이 가지는 함축적인 의미를 포섭하여 확장하는 대안도 현실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