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고 연죽사(煙竹寺)라 하였던 것을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眞覺國師)가 현재의 위치 가까이로 옮겨서 중창하고 영장사(靈藏寺)라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하여 불타버렸고, 1636년(인조 14) 계원(戒元)과 영철(靈哲)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중창하고 화방사라 하였다. 그 뒤 영조와 정조 때의 고승인 가직(嘉直)이 머물면서 갖가지 이적(異蹟)을 남겼고, 절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1985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채진루(採眞樓)와 승당(僧堂) · 산신각 ·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보광전은 정면 3칸의 건물로서 1636년의 옮길 때 중수하였다. 내부구조와 조각이 조선시대 법당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건물이다.
유물로는 옥종자(玉宗子)와 금고(金鼓), 그리고 2,000자로 된 이충무공비문목판(李忠武公碑文木版) 등이 있다. 이 중 옥종자는 사찰이 건립되어 불상을 봉안할 때 불을 밝히는 옥돌로 만든 등잔이다. 한 번 불을 붙이면 깨뜨려서는 안 되고,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붙여서는 안 된다. 이 옥종자는 1234년(고종 21) 이전에 만들어져 불이 점화된 뒤 임진왜란 때 꺼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름 24㎝, 높이 12㎝, 두께 2㎝, 무게 3.9㎏, 용량은 3ℓ이다. 또, 금고는 조선 중기의 작품으로 지름 70㎝, 너비 10㎝, 두께 1㎝이며, 표면 사방에 범자(梵字)를 양각하였다.
이 절은 용문사 · 보리암과 함께 남해군의 3대사찰 중 하나이며, 절 주위에는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닥나무가 자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