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복천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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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불교
유적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
유적/건물
건립 시기
신라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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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복천암은 신라시대 창건된 사찰로, 조선 초에는 왕실의 원찰로 시주와 중건이 이루어졌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의 하나이며 고려 초 사용된 기와가 출토되었고 2건의 보물과 4건의 지정문화재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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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
내용

복천사연력(福泉禪院年歷)에 의하면 복천암은 720년(성덕왕 19)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진정(眞定)이 처음 창건하고, 776년(혜공왕 12)에 진표(眞表)의 제자인 영심(永心)이 중건하였다고 하며 고려 전기까지도 재차 주1 기록이 확인된다. 주2 내에서 채집한 주3의 등 문양으로 보면 복천암은 고려 초기에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1449년(세종 31)에는 세종의 쾌유와 만년의 장수를 빌기 위해 왕실의 원찰로 중건하도록 하였고, 효녕대군, 수양대군 등이 시주하였다. 문종대 복천사 중건 기록에서는 신미(信眉)가 중심이 된 사실이 확인된다. 1451년(문종 1)에 복천사가 중건되자, 안평대군이 새로 주조한 아미타삼존불을 모시고 와서 극락보전에 봉안하고 세종의 수륙재(水陸齋)를 지냈다. 이후 세조가 복천사로 주4 극락보전에서 삼보에 공양하였다.

1733년(영조 9)에 화재로 전각이 소진되고 아미타삼존불도 소실되었다. 이후 1735년(영조 11)에 탁융(卓融), 승준(勝俊), 백한(白閑) 등이 중건하였고 천신(天信) 등이 1737년(영조 13)에 목조 아미타삼존불을 조성하였으며 이것이 지금도 전한다.

1803년(순조 3)에는 법현(法賢), 근활(近活), 취준(就俊) 등이 극락보전을 중건하였고 1905년(고종 9)에는 나한전을 중건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각의 노후로 인해 1976년부터 복천선원장(福泉禪院長) 월성(月性)의 주관 하에 대대적인 중건이 이루어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며 복천암 수암화상탑, 복천암 학조등곡화상탑 등이 보물로 지정되었고 지정문화재로는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삼존불상, 신중도, 삼세불도 등이 있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논문

민덕식, 「속리산 법천암과 신미대사」(『충북사학』 제21집, 충북사학회, 2008)

인터넷 자료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본사 법주사(http://www.beopjusa.org/kor)
주석
주1

낡은 건물이 헐리거나 고쳐져서 다시 지어지다. 우리말샘

주2

절이 차지하고 있는 구역 안. 우리말샘

주3

평면은 네모형, 횡단면은 원호로 된 평평한 기와. 우리말샘

주4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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