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흥사(福興寺)라고도 한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고려 초기에 창건하였다.
이 절에는 승려를 출가시키기 위해 나라에서 마련한 계단(戒壇)인 관단(官壇)이 있어서 원융국사(圓融國師)·혜덕왕사(慧德王師) 등을 배출한 유명한 사찰이다.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이후에 폐허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폐사지에는 법당 터의 주춧돌과 삼층석탑, 2기의 석재, 부도(浮屠), 귀부(龜趺) 등이 있다.
이 절은 신라 말 고려 초에 개성 부근에 세워진 중에서 유일하게 쌍탑가람(雙塔伽藍)의 형식을 보이고 있는 매우 희귀한 유지(遺址)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오학린(吳學麟)과 변계량(卞季良)의 시가 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하여 조선 초기에는 법당과 수각(水閣)이 있었고 매우 한적한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