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높이 1.73m, 너비 1.1m, 두께 15㎝. 197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수(螭首)와 귀부(龜趺)를 갖추고 있으나 비신은 일찍이 도괴되어 아랫부분이 파손되었다.
원융국사 결응(決凝)의 탑비로서, 성은 김씨, 자는 혜일(慧日)로, 12세에 출가하여 복흥사(福興寺)에서 수계(受戒)하고, 28세에 대덕(大德)이 되었으며, 정종 때 왕사, 문종 때에 국사가 되었다.
1041년(정종 7) 부석사에 들어가 신라 의상(義湘)이 전한 화엄법통을 이어받았다. 1053년(문종 7) 4월 부석사에서 입적하자 왕은 ‘원융(圓融)’이란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고청(高聽)이 짓고 글씨는 임호(林顥)가 썼다. 전액(篆額)도 임호가 썼다고 하는데, 고청이나 임호의 사적은 전하는 바 없다. 글씨는 자경(字徑) 2㎝의 해서로 구양순체(歐陽詢體)를 따랐으나 좁고 긴 짜임새나 골격 위주의 수척한 획은 독특하다.
명문 중에 연호나 연대가 마멸되어 비의 건립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결응이 1053년에 입적하였으므로 대략 입적한 해이거나 다음해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