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 초 국왕들의 공경을 받았던 승려.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892년(진성여왕 6) 당나라의 이름 있는 여러 사찰을 찾아 수행하다가, 무주(撫州: 강서성)의 소산(疎山)에서 조동종(曹洞宗)의 광인(匡仁)을 만났다. 그곳에서 심인(心印)을 받은 뒤 성지 참배에 더욱 정진하였고 또한 강서지방의 노선(老善)을 찾아가 그의 법문을 들었다.
그 후 귀국을 결심하게 되었고 921년에 전라도 임피군(臨陂도 군산시 임피면)으로 귀국하였다. 그곳은 당시 후백제 견훤이 자리잡고 있던 지역이었다. 이에 견훤은 경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를 친견한 뒤에는 이내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에 견훤은 경보를 전주에 있는 남복선원(南福禪院)에 머물도록 하여 스승으로 삼았다. 당시 중국 유학을 마친 선승들은 후백제 지역으로 귀국하는 사례들이 종종 확인되는데, 경보의 경우는 견훤이 스승으로 공경한 사실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드문 사례이다. 그는 뒷날 다시 백계산의 옥룡사(玉龍寺)로 옮겼다. 936년에 고려 태조가 삼국을 통일함에 이르렀고, 경보를 왕경으로 초빙하였고 역시 스승으로 높였다.
태조의 뒤를 이어 2대 국왕인 혜종과 3대 정종 역시 경보에 대한 존경을 표하였다. 정종도 경보를 왕경으로 초빙한 사실이 전해진 후 옥룡사 상원(上院)에 머물렀고, 제자들에게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탑과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입적하였다. 나이 80세, 법랍 62세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천통(泉通)과 현가(玄可)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朝鮮金石總覽』(朝鮮總督府, 1919)
단행본
- 정호경, 『조선선교사(朝鮮禪敎史)』(보련각, 1978, (忽滑谷快天, 『朝鮮禪敎史』, 1930))
- 허흥식, 『한국금석문(韓國金石文)』(아세아문화사, 198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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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불도를 닦아 깨달은 승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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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전라남도 구례군 지리산에 있는 절. 백제 성왕 22년(544)에 연기 대사(緣起大師)가 창건하였다.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 되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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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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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618년에 중국의 이연(李淵)이 수나라 공제(恭帝)의 왕위를 물려받아 세운 통일 왕조. 도읍은 장안(長安)이며,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문화가 크게 융성하였으나, 안사(安史)의 난 이후 쇠퇴하여 907년에 주전충(朱全忠)에게 망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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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중국의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조계(曹溪)에서 법을 전하여 일어난 종파. 제2조 조산(曹山)과 제1조 동산(洞山)의 이름에서 종명을 삼았다고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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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선원에서, 글이나 말로 나타낼 수 없는 내심(內心)의 깨달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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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는 문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교법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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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친히 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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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선종의 승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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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왕과 대신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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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승려가 죽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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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승려가 된 뒤로부터 치는 나이. 한여름 동안의 수행을 마치면 한 살로 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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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임금의 명령.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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