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영암 출생. 성은 김씨. 자는 광종(光宗). 경보는 법명이다. 아버지는 알찬(閼粲) 익량(益良)이며, 어머니는 박씨이다.
19세에 팔공산 부인사(符仁寺)로 출가했다가 전라도 광양의 백계산(白鷄山)으로 옮긴 뒤 도승(道乘)의 제자가 되어 선(禪)과 율(律)을 익혔다. 19세에 월유산 화엄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계율을 수행하는 데 몰두하다가, 백계산을 떠나 성주산(聖住山)의 무염(無染)과 굴산사(堀山寺)의 범일(梵日) 문하에서 선을 닦았다.
892년(진성여왕 6) 당나라의 이름 있는 여러 사찰을 찾아 수행하다가, 무주(撫州: 강서성)의 소산(疎山)에서 조동종(曹洞宗)의 광인(匡仁)을 만났다. 광인은 ‘가자미 바다에서 온 용’이라고 하면서 선법(禪法)을 전하였다. 그 뒤 광인의 소개로 강서지방의 노선(老善)을 찾아가니, “흰구름에 가리어 길이 막혔네.”라고 하였다. “본디 푸른 하늘 길에 흰구름이 어찌 있나.”라고 답하였는데, 노선은 그 뒤 매우 귀중하게 여겼다.
그 후 노선의 만류를 뿌리치고 여러 사찰을 다니다가 921년에 귀국하여 전라도 임피군(臨陂郡: 지금의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에 이르렀는데, 후백제의 견훤이 전주에 있는 남복선원(南福禪院)에 머물게 하고 스승으로 삼았다. 뒷날 다시 백계산의 옥룡사(玉龍寺)로 옮겼다가, 936년 견훤이 죽고 고려로 통일되자 태조가 왕사로 모셨다.
그 뒤 2대 혜종과 3대 정종의 왕사가 되었으며, 정종의 명으로 개경에서 머물다가 옥룡사로 돌아와 상원(上院)에서 머물렀다. 제자들에게 “옷차림을 바로 하고 음식을 평등히 하고 선열(禪悅)로써 맛을 삼아라.”는 임종게(臨終偈)와 함께, 탑과 비석을 세우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입적하였다. 나이 79세, 법랍 62세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천통(泉通)과 현가(玄可) 등이 있다.
정종은 옥룡선화상(玉龍禪和尙)이라 부르고, 동진대사(洞眞大師)라는 시호와 보운(寶雲)이라는 탑명을 내렸다. 비는 958년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비문은 제자인 현가가 썼으며 계묵(繼默)이 새겨서 옥룡사에 세웠다. 현재 옥룡사 터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