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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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한림원(翰林院 : 藝文館)의 정4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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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 한림원(翰林院 : 藝文館)의 정4품 관직.
내용

정4품으로 정원은 2인이었다. 문한 관서(文翰官署)로는 한림원·사관(史館 : 春秋館)·비서성(秘書省)·보문각(寶文閣)·동문원(同文院)·유원(留院 : 御書院) 등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한림원이 으뜸이었다.

따라서 한림학사 또한 무한한 영광으로 여겼으니, 이규보(李奎報)는『동국이상국집』에서 ‘한림원은 지밀(至密)한 위치이고 학사는 높은 벼슬’, ‘학사는 내한(內翰)의 왕을 가까이 모시는 벼슬’, ‘학사는 내상(內相)의 높은 자리’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왕명을 받들어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과거를 관장하며 서적을 편찬하고, 서연관(書筵官)으로서 왕에게 강의하고 시종관(侍從官)으로서 왕의 거둥에 시종하는 등의 임무를 맡았다.

관원 중 정예 가운데 정예였으므로, 한림학사를 역임한 자 중 약 7할이 재추(宰樞)에 올랐다. 1298년(충렬왕 24) 충선왕이 사림원으로 개칭하면서 정3품으로 올렸으며, 다시 문한서(文翰署)로 개칭할 때 학사를 고쳐 사학(司學)이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고려한림원고(高麗翰林院考)」(최제숙, 『한국사논총(韓國史論叢)』4, 1981)
「高麗初期の翰林院」(周藤吉之, 『東洋學報』58,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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