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난원경 묘지명은 백제 유민 난원경과 부인 감씨의 가계와 일생 등을 기록한 묘지명이다. 1960년에 발견되었으며 현재 중국 노산현문화관에 보관되어 있다. 난원경은 당나라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무관으로 활동하였으며 삭방군 총관 등을 지냈다. 묘지명에 따르면 난원경의 고조는 백제에서 달솔에 오른 난조이며, 조부 난한과 부친 난문은 백제 멸망 당시 당에 투항하여 웅진도독부에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묘지명에는 백제 난씨 가문의 출자와 성씨의 유래, 난원경의 죽음과 장례, 부인 감씨의 생애와 죽음 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백제유민사 연구에 중요한 금석문 자료이다.
정의
백제 유민인 난원경과 부인 감씨의 가계와 일생 등을 기록한 묘지명.
개설
내용
묘지명에 선조에 대해 기록하면서 일반적인 당대의 묘지명과 달리 고조부터 언급하고 있다. 대개 증조-조부-부친 순으로 기록하지만, 한 대를 올려 고조부터 언급한 것은 백제 출신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고조인 난조가 백제의 달솔이었다고 기록한 것이 바로 난원경이 백제계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증조부에 대한 기록은 없고, 조부 난한은 백제가 망한 후 당의 기미주인 웅진도독부 장사를 지냈고, 부친인 난무는 웅진도독부 지심주 제군사와 자사를 지냈다고 기록했다. 이는 난원경의 조부와 부친이 웅진도독부에서 활약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가 백제에서 태어났을 가능성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난원경은 당에서 유격장군 행단주 백단부 우과의를 지냈고, 문장에도 뛰어나 중서성에 차출되어 근무했다. 이후 하주 영삭부 좌과의 도위를 지냈고, 군사에도 뛰어나 삭방군 총관에 제수되어 구성철륵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자금어대의 관작을 수여받기도 했다. 계속 전공을 세워 선위장군을 제수받고 분주 청승부 절충도위에 올랐다. 이처럼 난원경은 주로 무관으로 활약했다.
난원경이 다른 백제 유민들과는 달리 장안이나 낙양이 아니라 낙양 남쪽의 여주 용흥현에서 거주하다가 723년 6월 향년 61세에 세상을 떠났다. 부인은 단도현군의 관작을 받은 감씨로 좌옥금위대장군 감라의 장녀로 당의 무인 가문과 혼인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인 감씨는 난원경이 세상을 떠난 지 11년 뒤인 734년 11월 67세에 여주 노산현의 사제에서 돌아갔다고 했다. 장례는 부인 감씨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노산현 동북쪽의 언덕에 난원경과 합장하였다. 자손은 아들 1명이 있었던 것 이외에는 알 수 없다. 묘지의 말미에는 10수의 명을 기록하여 난원경의 조상과 난원경의 활동, 장례 등에 대해 찬양하였다.
특징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백제 유민 묘지명의 현황과 가치」(김영관, 『중국 출토 백제인 묘지 집성』,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6)
- 「난원경 묘지명」(최경선, 『한국고대문자자료연구: 백제(하)』, 주류성출판사, 2015)
- 「백제 유민 난원경 묘지의 소개」(이문기, 『경북사학』 23, 200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