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사계 ()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당나라에서 행좌우림군장군, 농우절도사, 경략대사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이칭
이칭
노정빈(盧庭賓), 고투항수령낙사계(故投降首領諾思計)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748년 5월
출생지
발해 부여부
주요 관직
부여부 대수령|유격장군|행좌우림군장군|농우절도사|경략대사
관련 사건
거란 정벌(734)
정의
남북국시대 당나라에서 행좌우림군장군, 농우절도사, 경략대사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개설

발해 15부 중 하나인 부여부(夫餘府)의 대수령(大首領) 출신. 당에 투항하여 무장으로 활동하였다. 당 현종에게 받은 이름은 노정빈(盧庭賓)이다. 중국 서안박물원에 보관되어 있는 그의 묘지명을 통해 구체적인 생애가 세상에 알려졌다.

생애 및 활동사항

낙사계는 734년 8월당의 유주장사(幽州長史) 설초옥(薛楚玉)과 함께 거란과의 전쟁에 공봉장군(供奉將軍)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사실은『문원영화(文苑英華)』에도 기록되어 있다. 낙사계는 이때 노정빈(盧庭賓)이라는 이름으로 참전하였는데, 이는 당 현종에게 받은 성과 이름이다.

낙사계묘지명에 낙사계가 특별히 활을 잘 쏘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그가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고구려의 후예로서 발해인이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낙사계는 비록 당에 투항해 무장으로 활동하면서 당나라 고위관직에 올랐지만 끝내 발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이는 낙사계묘지명의 수제(首題)에 당에서 받은 관직과 당 황제로부터 받은 성명이 아닌 “고투항수령낙사계(故投降首領諾思計)”라고 기록함으로써 발해의 수령이었던 사실을 밝히고 있는 데서 잘 확인된다.

그는 행좌우림군장군, 농우절도사, 경략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당 황제로부터 유격장군(游擊將軍), 영원장군(寧遠將軍), 명위장군(明威將軍), 선위장군(宣威將軍), 장무장군(壯武將軍), 충무장군(忠武將軍), 운휘장군(雲麾將軍),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 등을 제수받기도 하였다. 748년 5월 장안성(長安城) 경조부(京兆府) 만년현(萬年縣) 평강방(平康坊)에 있는 자택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발해인 낙사계 묘지명에 대한 고찰」(김영관,『목간과 문자』7, 2011)
『文苑英華』
『唐代墓誌滙編續集』(周紹良·趙超 主編, 上海古籍出版社, 2001)
『全唐文補遺』第五輯(陝西省古籍整理辦公室 編, 三秦出版社, 1998)
『隋唐五代墓誌滙編』4冊 陝西卷(吳鋼 主編, 陝西古籍出版社,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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