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출토 백제와전명 ( )

고대사
유물
공주지역의 건물지와 고분 등 유적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기와와 벽돌 등에 새겨진 문자.
정의
공주지역의 건물지와 고분 등 유적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기와와 벽돌 등에 새겨진 문자.
개설

공주지역에서 문자가 새겨진 벽돌은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벽돌은 부여 정동리 가마터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어 공주지역의 무덤 축조에 필요한 벽돌을 정동리 가마터에서 만들어 조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산성과 정지산 유적에서는 공주와 관련된 지명인 웅천(熊川)을 비롯해 여러 가지 글자가 양각된 기와가 발견되었고, 서혈사지 등에서도 문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다. 인각와는 공산성과 반죽동에서 발견되었는데, 양각 또는 음각으로 도장을 새겨 찍었는데, 글자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는 없다.

내용

무령왕릉에서는 중방(中方), 대방(大方), 급사(急使), 중(中), 장대(杖大) 등이 양각된 벽돌과, 사임진년작(士壬辰年作)이라고 음각하여 새긴 벽돌이 출토되었다. 송산리 6호분에서는 중방(中方), 대방(大方)이 새겨진 벽돌과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여 ‘양관와위사의(梁官瓦爲師矣)’라고 새긴 벽돌이 한 점 출토되었다. 문자가 새겨진 벽돌은 모두 무덤을 축조하는데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여 정동리 가마터에서 중방(中方), 대방(大方)이라고 새겨진 벽돌이 발굴되었는데 송산리 6호분 및 무령왕릉 출토 벽돌과 동일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에서 발견된 대방, 중방, 급사 등 문자가 새겨진 벽돌은 각기 무덤방 안에서 벽돌이 사용될 위치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임진년이라고 새겨진 벽돌은 512년 임진년에 무령왕릉 축조를 위해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양관와위사의(梁官瓦爲師矣)’라고 새긴 벽돌은 송산리 6호분의 널길을 막기 위해 사용된 벽돌의 하나이다. 글자의 판독과 뜻을 두고 이견이 있지만, 대개 ‘양나라의 기와를 본보기로 삼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자가 새겨진 기와는 공주 웅진동과 금성동에 걸쳐 쌓은 공산성 내의 건물지와 연못에서 발견되었다. 웅(熊), 웅천(熊川), 관(官), 류(流), 우(右), 공(公), 전(田) 등이 암키와에 양각된 것이다. 금성동의 정지산유적에서도 웅천(熊川)이 양각된 기와가 출토되었고, 웅진동 서혈사(西穴寺) 터에서는 삼보(三寶)와 서혈사(西穴寺)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다. 이들 명문은 사용되는 건물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산성 내에서 주(主), 칠(七)이 원형에 음각으로 찍힌 인각와와 중(中), 중수(中水), 북(北), 하(下) 등이 방형에 양각으로 찍힌 인각와가 출토되었다. 반죽동에서는 대통(大通)이 원형에 양각으로 찍힌 인각와가 출토되었다. 과거에는 이를 근거로 대통(大通)이 새겨진 인각와가 출토된 반죽동을 백제 대통사(大通寺)로 보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부여 부소산성의 동문지와 남문지에서도 똑같은 인각와가 출토되므로 공주 반죽동을 대통사터로 보기는 어렵다.

특징

문자가 새겨진 전돌은 중국 양나라에서 받아들인 벽돌무덤의 제작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기와에 도장처럼 찍어서 새긴 인각와는 인장와라고도 하는데, 공주에서는 종류도 한정되어 있고 소량만 출토되었다. 이는 웅진시대에 인각와가 출현하였지만, 아직 보편화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황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 등 공주지역 벽돌무덤에서 발견된 문자가 새겨진 벽돌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 가마터에서 동일한 것이 발굴 조사되었다. 인각와는 공산성 내에 있는 건물지와 성 밖 반죽동에서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 등에서 출토된 문자가 새겨진 전돌은 웅진 천도 후 백제가 양나라의 무덤양식을 받아들이면서 제작된 것으로 오직 공주지역에서만 나타난다. 벽돌들의 원형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백제와 중국 남조와의 문화교류 양상을 보여준다. 공산성과 반죽동 등에서 출토된 인각와는 부여와 익산을 비롯한 백제의 중요한 지방지배거점에서만 발견되는 것으로 도읍지였던 공주의 역사적 위상을 대변해 주는 것이다. 인각와는 웅진시대에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사비시대에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한국고대문자자료연구』백제(상)-지역별-(권인한‧김경호‧윤선태 공동편집, 주류성, 2015)
『한국고대문자자료연구』백제(하)-주제별-(권인한‧김경호‧윤선태 공동편집, 주류성, 2015)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국립중앙박물관 편, 통천문화사, 2011)
『백제와전』(국립부여박물관 편, 시티파트너, 2010)
『백제의 문자』(국립부여박물관, 2002)
『한국 고대의 문자와 기호유물』(국립청주박물관 편, 통천문화사, 2000)
집필자
김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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