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예소사 묘지명은 중국 섬서성 서안시에서 발굴된 백제 유민 예소사의 묘지명이다. 2010년 4월 서안시 문물보호고고연구소가 발굴하였다. 개석은 정방형이며, 가로 60㎝, 세로 60㎝, 두께 13.3㎝이다. 지석은 판석형이며, 가로 60㎝, 세로 60㎝, 두께 15㎝이다. 지석에는 7대조 예숭이 산동 낭야에서 5세기 전반에 전란을 피해 백제로 이주했으며, 백제가 멸망 후 증조부터는 다시 중국에서 활동했다는 내용과 예소사의 입당 후 활동과 장례, 자손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묘지명은 백제와 중국 간의 인적 교류 양상에 대해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백제 유민 예소사의 묘지명.
개설
내용
증조부는 대방주자사를 지냈고, 조부는 수의 래주자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증조부가 대방주자사를 지냈다는 것과 조부가 래주자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추증에 의한 관직 수여기록일 수도 있으나, 조부 예선의 래주자사 임명은 수의 고구려 정벌시 명목상이나마 백제가 참전함에 따라 예선이 수 조정으로부터 받은 관직일 가능성도 있다. 증조부의 이름을 진, 조부의 이름을 선으로 기록한 것은 부친인 예식진 묘지명에 예다와 사선으로 기록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부친인 예식진이 당에 들어간 뒤에 귀덕장군으로 웅진도독부 동명주 자사를 지냈다고 기록한 것 역시 예식진의 묘지명에는 없는 새로운 내용이다.
예소사가 당에 들어간 이후의 활동에 대해 기록한 것을 보면, 15세에 부친인 예식진의 전공으로 유격장군 장상이 되었고, 용천부 우과의, 용원부 좌과의, 임장부 절충, 좌표도위 좌낭장, 우응양위 우낭장, 좌감문 중랑 등 주로 무관으로 활동하였고, 703년에는 청이군 부사, 705년에는 좌무위장군이 되었다. 708년 6월에 중종 황제의 명으로 지방을 순무하다가 서주에서 병을 얻어 죽었다. 장안성 남쪽인 옹주 고양원에 장례를 지냈으며, 아들이 다섯 있었다는 것과 그를 찬양하는 명문 6수가 묘지명 말미에 실렸다. 예소사의 출생연도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개 의자왕 말기인 656년에서 658년 사이에 태어났고, 백제 멸망 후 부친인 예식진을 따라 당에 들어와 활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징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백제 유민 묘지명의 현황과 가치」(김영관, 『중국 출토 백제인 묘지 집성』,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6)
- 「예소사 묘지명」(최상기, 『 한국고대문자자료연구: 백제(하)』, 주류성출판사, 2015)
- 「백제 유민 예씨일족 묘지명에 대한 단상」(권덕영, 『사학연구』 105, 2012)
- 「중국 발견 백제 유민 예씨 가족 묘지명 검토」(김영관, 『신라사학보』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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