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백제 좌평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유민.
개설
예군묘지명의 기록은 예식진묘지명의 내용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조부는 좌평 예(譽)이고, 부친은 좌평 선(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예식진묘지명에는 예다(譽多)와 사선(思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같은 인물에 대한 다른 표기일 것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670년 7월 신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신라를 정탐한다는 혐의를 받고 2년 동안 억류되었다. 672년 9월 신라에서 풀려나 당으로 돌아갔고, 그 해 672년 11월 21일에 우위위장군(右威衛將軍)에 제수되었다. 678년 2월 19일 장안성의 연수리(延壽里) 사저에서 향년 66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 고종 황제의 조서(詔書)로 그 해 10월 2일 장안성 남쪽의 고양원(高陽原)에 장례를 치렀다. 당 고종이 오랫동안 슬퍼했고, 견포(絹布) 300단과 조 3,000승(升)을 하사했다고 한다. 장례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관에서 지급하도록 하였고, 홍문관 학사 겸 검교 우위위장사(右威衛長史) 왕행본(王行本)에게 감호(監護)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백제 유민 예씨 일족 묘지명에 대한 단상」(권덕영,『사학연구』105, 2012)
- 「중국 발견 백제 유민 예씨 가족 묘지명 검토」(김영관,『신라사학보』24, 2012)
- 「百濟人禰軍墓志考論」(王連龍,『社會科學戰線』2011年 第7期, 吉林省 社會科學院, 2011)
- 『日本書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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