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당평백제국비는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의 제1층 탑신과 옥개받침에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蘇定方)의 공적을 새겨둔 기공비이다. 당평제비, 평제비, 소정방비, 당평제탑비, 평제탑비, 정림사지오층석탑각자, 정림사지오층석탑미석각자 등으로도 불린다.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이 당의 백제정벌을 합리화하고 종군 장수를 미화하기 위해 백제를 상징하는 정림사 석탑에 비문을 새겨 넣었다. 당군의 공적만 기록하였다는 한계가 있지만 백제 멸망 당시 정치상황과 지방지배체제, 호구 상황 등을 알려주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높다.
정의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의 제1층 탑신과 옥개받침에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蘇定方)의 공적을 새겨둔 기공비.
개설
대체적으로 단정하고 고른 편이지만, 중반부 이후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글씨 크기도 고르지 않고 옹졸해진다. 석탑 1층 탑신의 남쪽면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쪽면, 북쪽면, 동쪽면 순서로 총 117행에 걸쳐 1,934자를 새겼다. 또한 1층 탑신의 서쪽과 북쪽 옥개받침의 아래 면에 행당 3자씩 64행에 걸쳐 192자를 새겼다. 문장의 형식은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이다. 옥개받침에는 종군 장수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대당평백제국비명이라는 명칭 이외에 당평백제국비, 당평제비, 평제비, 소정방비, 당평제탑비, 평제탑비, 정림사지오층석탑각자, 정림사지오층석탑미석각자 등으로도 불린다. 또한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대당평백제국비명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평제탑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거의 같은 내용을 궁궐 안에 있던 석조(石槽) 표면에도 새겼는데,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내용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도성 한복판에 있어 여러 사람에게 잘 알려져 있고, 불교 국가였던 백제를 대표하는 중심적인 사찰이라는 상징적인 곳이었다. 여기에 서 있는 석탑에 백제를 멸망시킨 전공을 새긴 것은 백제인의 종교와 신앙을 짓밟는 야만적인 행위였다. 또한 궁궐의 석조에도 같은 내용을 새긴 것은 더 이상 백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멸망하였다는 것을 백제의 유민들에게 분명하게 인식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비명의 기록은 당과 적대적이었던 고구려와 백제가 동맹한 것과 의자왕의 실정을 부각시킴으로써 당의 정벌이 천륜을 어긴 국가에 대한 정당한 것라고 합리화시켰고, 소정방이 직접 거느렸던 당군의 공적만을 기록한 기공비라는 점에서 사료로서의 가치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비명은 백제 멸망기의 정치상황과 지방지배체제, 호구 상황 등을 알려주는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비명은 멸망 당시 백제 태자가 부여융(扶餘隆)이었고, 호구는 74만호 620만에 달할 정도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지방을 5방과 37군 250성으로 편제하였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특징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대당평백제국비명에 대한 고찰」(김영관, 『역사와 담론』 66, 2013)
- 「정림사지석탑각자」(국립중앙박물관, 『금석문자료』 ① 삼국시대, 예맥, 2010)
- 「정림사지 오층탑 비명과 그 작성 배경」(이도학, 『선사와 고대』 8, 1997)
- 「당평제비」(김영심, 『역주 한국고대금석문』Ⅰ, 한국고대사회연구소, 1992)
- 「대당평백제국비명 문제에 대한 고찰」(배근흥, 『충북사학』 20, 200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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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중국 당나라의 장군(592~667). 이름은 열(烈). 정방은 자(字). 현경(顯慶) 5년(660)에 나당(羅唐) 연합군의 대총관으로서 13만의 당군을 거느리고 백제의 사비성을 함락하고, 의자왕과 태자 융(隆)을 사로잡았다. 661년에는 평양성을 포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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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탑기단(塔基壇)과 상륜(相輪) 사이의 탑의 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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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전자(篆字) 모양으로 쓰는 서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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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중국 남북조 시대의 서풍을 따른 서체. 현재 책 따위에서 많이 활용되는 서체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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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중국의 육조와 당나라 때 성행한 한문 문체. 문장 전편이 대구로 구성되어 읽는 이에게 아름다운 느낌을 주며, 4자로 된 구와 6자로 된 구를 배열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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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돌이나 쇠붙이에 새긴 그림이나 글씨가 오래 묵어 긁히고 깎이어서 떨어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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