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법주사 괘불탱은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괘불도이다.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세로 13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면에 보살 형태의 본존을 단독으로 그린 독존도 형식의 괘불도이다. 1766년에 두훈을 비롯한 13명의 화승이 제작하였다. 화면에 가득 찬 본존불은 둥근 얼굴에 화려한 장식의 보관을 쓰고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배경으로 서 있다. 몸에는 꽃무늬가 시문된 흰색의 군의를 입고 두 손으로 꽃가지를 받들고 있다. 이 작품은 17, 18세기에 유행하던 보관형 석가모니괘불도로서 조선 후기 괘불도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정의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괘불도.
개설
내용
조선후기의 괘불도 가운데 법주사 괘불도처럼 보관을 쓰고 꽃을 든 존상을 표현한 작품은 부여 무량사 괘불도(1627년)를 시작으로 장곡사 괘불도(1673년), 율곡사 괘불도(1684년), 마곡사 괘불도(1687년), 금당사 괘불도(1692년), 적천사 괘불도(1695년), 수도사 괘불도(1704년), 포항 보경사 괘불도(1708년), 청량산 괘불도(1725년), 통도사 괘불도(1767년), 쌍계사 괘불도(1799년)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화기 등에 의해 존상의 명칭이 밝혀진 것은 많지 않아서 무량사 괘불도와 장곡사 괘불도는 미륵존상, 마곡사 괘불도와 청량사 괘불도, 통도사 괘불도는 석가모니불, 수도사 괘불도는 노사나불 등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법주사 괘불도의 경우 화기에 그냥 괘불탱이라고만 적혀있어 본존의 명칭을 확인하기 어렵다. 법주사 괘불도의 본존을 노사나불이라고 하는 설도 있지만 두훈이 이 괘불도를 그리고 바로 다음 해에 조성한 통도사 괘불도(1767년)의 본존이 꽃을 들고 있는 석가모니불이라는 점에서 법주사 괘불도의 본존은 석가모니일 가능성이 크다. 석가모니가 연꽃을 들고 있는 것은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석가가 연꽃을 대중에게 들어보였을 때 가섭존자(迦葉尊者)만이 그 의미를 알고 미소를 지었다는 선종의 염화시중(拈花示衆), 즉 선종에서 교법을 전하는 염화시중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서 조선 후기의 법화신앙(法華信仰)과 선종(禪宗)이 결합된 복합적 불교신앙을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꽃을 든 부처: 보물 1350호 통도사 석가여래괘불탱』(국립중앙박물관, 2006)
- 「법주사 괘불의 고찰」(이영숙, 『문화사학』제28호, 문화사학회, 2007)
- 「조선 후기 괘불탱의 연구」(정명희, 『미술사학연구』242·243, 한국미술사학회, 200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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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말로 통하지 아니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 석가모니가 영산회(靈山會)에서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보이자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미소 지으므로 그에게 불교의 진리를 주었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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