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불의 영취산 설법 장면을 표현한 그림으로써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및 4보살,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비롯한 10대 제자, 범천 및 제석천, 팔부중, 사천왕 등이 본존인 석가모니불을 둥글게 에워싸는 구도를 보여준다.
1896년(건양 1) 작. 본존인 석가모니불은 녹색의 두광과 오색 광선이 가득한 신광을 배경으로 높은 수미 대좌 위 연꽃 대좌에 결가부좌하였다.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는 작은데, 머리에는 높고 뾰족한 육계와 넓적한 중간 계주로 장식하였으며 정수리에는 원형의 정상 계주로 마무리하였다. 신체는 둥근 어깨와 낮은 무릎 등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면서 균형감 있는 신체표현을 보여준다.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넓게 드러낸 가슴에는 군의(裙衣)를 입고 그 위에 화문으로 가장자리를 댄 붉은 법의를 걸쳤는데, 청련의 대좌 좌우로 옷자락이 넓게 흘러내렸다.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오른손은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여 무릎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가부좌한 무릎 위에 손바닥을 위로 하고 손가락을 마주잡았다.
본존 좌우로는 6구의 보살이 시립하였는데, 중앙에는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흰 연꽃을 든 보현보살이 정면을 향해 서 있고, 그 뒤로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이 각각 합장 혹은 지물을 들고 본존을 향해 시립하였다. 보살 위로는 십대제자가 좌우에 각 5구씩 상반신을 드러낸 채 서있으며, 그 옆으로 범천과 제석천이 합장하고 본존을 향해 서있다. 중앙을 향해 마주 보고 있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와 달리 나머지 존자들은 서로 쳐다 보고 말을 하는 듯 자유로운 표정인데, 불보살과 달리 얼굴에 강한 음영처리를 하여 입체감이 돋보인다. 화면 가장자리에는 사천왕과 팔부중 등 호법신들이 불, 보살, 제자들을 에워싸는 듯 시립하였다. 이들 역시 제자와 마찬가지로 얼굴에는 강한 음영을 사용하여 입체감이 두드러지면서도 개성 있는 얼굴 모습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원색을 사용하였다. 본존과 보살상은 가는 먹선으로 윤곽선만을 표현한 반면 십대제자와 신장들의 얼굴은 음영처리를 하였다. 보살상의 보관과 사천왕상의 지물 등은 일부분에 금박을 이용하여 사실적인 표현을 강조하였다.
이 그림은 19세기 말인 1896년(건양 1)에 동호 진철(東昊震徹)을 수화사로 하여 봉화(奉華), 상조(尙祚), 용주(用周), 성연(性演) 등이 함께 조성하였다. 진철은 19세기 후반 경기도와 경상도에서 활동한 화승으로, 1880년(고종 17) 대에는 경기도에 머무르면서 경선 응석(慶船應釋) · 영명 천기(永明天幾) 등 경기도 지역 화승들과 함께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또한 그는 1890년(고종 27) 이후, 경상북도 문경 김용사와 대승사 등에 주석하면서 우송 상수(友松堂尙守) · 영운 봉수(影雲奉秀) 등과 함께 해인사, 남장사, 통도사 등의 불화를 조성하였다. 2012년 1월 30일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경기도와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동호 진철이 수화승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광선문의 원형 두신광에 얼굴이 크고 신체가 다소 빈약하면서도 알맞은 신체비례, 경직되면서도 힘이 없고 동그란 눈에 다소 어눌한 표정의 얼굴 등 진철의 특징적인 화풍이 잘 표현되었다. 조금 탁하면서도 명도가 높은 적색의 사용과 음영법의 적극적인 사용 등 조선 말기 불화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