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종이 바탕에 채색. 세로 785㎝, 가로 458㎝. 봉선사 소장. 1735년에 상궁 이성애(李性愛)가 영빈 김씨(寧嬪 金氏, 1669~1735)의 명복을 빌며 제작한 불화이다. 영빈 김씨는 숙종의 후궁이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현손녀이며 김수증(金壽增)의 손녀, 성천부사 김창국(金昌國)의 딸이다. 이 불화는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한 삼신불 형식의 괘불도이다. 최대 세로 144.4㎝, 가로 95㎝의 종이를 각각 세로 폭에 6매씩, 가로 폭에 5매씩 총 30매를 이어 붙여 제작하였다.
전체적으로 크게 상하 이단구도로 나뉘어져 있으며, 화면 상단 화염광배 안에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 노사나불이 전 화면에 꽉 차게 그려져 있다. 본존인 비로자나불은 지권인(智拳印)을 결하고 있으며, 비로자나불 왼쪽에는 보관을 쓰고 양손을 어깨까지 올려 설법인을 취한 장엄형의 노사나불, 오른쪽에는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왼손은 가슴까지 올리고 오른손은 배에 대고 설법인을 취한 석가모니불이 서있다. 화면 하단에는 6보살과 제석·범천, 10대제자, 천인, 설법을 경청하는 대중들을 V자형으로 배치하였으며, 하단 중앙부에는 각종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천인과 설법을 경청하는 인물을 구름으로 구획하여 배치하였다.
본존 비로자나불과 오른쪽 석가불은 불형(佛形)으로, 원만한 얼굴에 머리는 높이 솟아오른 육계(肉髻)에 반달모양의 계주(髻珠)를 갖추었으며, 노사나불은 화려한 보관을 쓴 보살형이다. 삼신불 중 본존 비로자나불은 한 발 뒤에 서 있고, 좌우 노사나불과 석가불이 한 발 앞에 서 있어서 두 불상이 본존의 좌우 어깨를 가리고 있다. 이처럼 본존이 양 협시불보다 뒤로 물러나 있는 구도는 봉선사 괘불도에서 시작하여 청룡사 소장 원통사 삼신괘불도(1806년), 성북구 흥천사 괘불도(1832년), 남양주 흥국사 영산회괘불도(1858년), 청계사 괘불도(1862년), 불암사 괘불도(1895년), 봉원사 괘불도(1901년) 등 19세기 서울·경기지역 괘불도의 구도로 계승되었다.
등장인물이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구사된 필선이 매우 힘차고 생동감이 있으며,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괘불도로서는 드물게 종이 바탕에 맑은 담채의 황색과 청색, 양록색, 녹색, 하늘색 등 밝고 화사한 색과 굵고 대담하면서도 능숙한 묵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인물들의 움직임 및 옷자락의 자연스러운 주름 표현, 힘찬 동세 등을 표현하고 있어 왕실발원 불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이 불화는 수화승(首畵僧) 각총(覺聰)이 칠혜(七惠), 두책(斗策), 태운(太雲), 만빈(萬彬)과 함께 조성하였다. 각총은 이 괘불도 외에 여주 신륵사 삼장보살도(1758년)의 수화승으로 참여하였으며, 칠혜는 18세기 전반에 학림사 괘불도를 조성하였다. 1774년 학림사 괘불도 중수화원이었던 처징(處澄)이 1758년에 각총과 함께 신륵사 삼장보살도(1758년)를 제작했기 때문에 두 작품 간의 도상적 유사성을 살펴볼 수 있다.
비로자나삼신불과 권속을 그린 괘불도로, 상부의 중앙에 법신(法身) 비로자나불, 향우측에 보신(報身) 노사나불, 향좌측에 화신(化身) 석가불, 하단 좌우로는 6구의 보살과 범천 및 제석천, 10대제자, 하단 중앙에는 주악천인과 용왕, 용녀 등을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삼신불과 권속들을 함께 그렸지만 언뜻 보면 삼신불 중심의 구도로 연상될 만큼 화면 상단의 삼신불을 큼직하게 배치하였다. 이러한 삼신불 중심의 구성은 이 괘불도를 비롯하여 학림사 괘불도(1774년 중수) 및 원통암 괘불도(1806년) 등 18세기 중, 후반경 서울·경기 지역의 삼신불괘불도에서 주로 볼 수 있다. 특히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은 여래형, 노사나불은 보관을 쓴 장엄형으로 묘사한 것은 학림사 괘불도와 동일하여, 18세기 경기도 지역 괘불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