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산내 암자이다. 속리산의 문장대(文藏臺) 아래에는 원래 상사자(上獅子)·중사자·하사자 등 세 암자가 있었는데, 상사자암과 하사자암은 약 90여 년 전에 폐허가 되었다. 바위 모양이 사자와 같다고 하여 사자암이라고 칭한 이 암자는 720년(성덕왕 19)에 창건하였다.
조선시대 세조는 이 암자에서 나라가 복되고 만물이 이롭기를 빌었으며 1641년(인조 19)에 지선(智禪)이 인조의 명에 따라 원종(元宗)의 원당(願堂)을 세웠을 때 능원대군(綾原大君)이 용화(龍華)에 있는 전답을 이 원당의 소속으로 희사하였다. 1759년(영조 35)에는 영조의 명에 따라 이수창(李壽昌)과 주지 현익(玄益)이 감독하여 중수하였고, 1837년(헌종 3)에는 왕실에서 총섭(摠攝) 하운(夏雲)과 신영원(申英遠)을 파견하여 중수하였다. 1887년(고종 24)에는 왕실로부터 천동(千銅)을 하사받아 일신 중창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때 소실되어 폐허가 되어 있던 것을 1957년 10월에 일제히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삼성각(三聖閣)이 있으며, 법당 안에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1896년에 제작한 후불탱화(後佛幀畵)가 봉안되어 있다. 암자의 서편에는 인공으로 깎은 듯한 감투바위가 있는데, 창건 당시의 산신당(山神堂)터였다고 한다. 그 아래편 일대는 조선 선조의 원당지(願堂址)로서, 6·25전쟁 때 소실되어 현재는 초석만 산재한다. 선조는 그의 원당을 짓고 어필(御筆) 병풍을 하사하였는데, 현재 법주사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1636년 6월에 구리 170근으로 만들어 중사자암에 두었던 중사자암동종은 2015년 보물 보은 법주사 동종으로 지정되어 법주사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 밖에도 이 암자에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사적비(事蹟碑)와 부도(浮屠) 1기가 있다. 조선시대 몇 백 년 동안 도총섭(都摠攝)이 머물렀던 이 암자는 문수보살이 항상 머물고 있다는 문수도량(文殊道場)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