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민장사

  • 종교·철학
  • 유적
  • 삼국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각간 민장이 창건한 사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충식 (동국대학교, 미술사)
  • 최종수정 2023년 0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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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각간 민장이 창건한 사찰.

내용

절터는 미상으로 각간 민장(敏藏)이 자기 집을 희사하여 창건한 절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우금리(禺金里)에 살았던 보개(寶開)의 아들 장춘(長春)은 배를 타고 다니며 장사하는 사람을 따라갔다가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애를 태우던 어머니는 이 절의 관음보살상 앞에서 7일 동안 정성껏 기도를 드렸더니 갑자기 장춘이 살아서 돌아왔다.

사연을 묻자 장춘은, 바다에서 돌풍을 만나 배가 부서져 판자에 의지하여 오나라에 이르렀는데, 그 곳에서 노예가 되었다. 그 때 고향에서 온 듯한 이상한 승려가 와서 데리고 가더니 깊은 개천을 만나자 옆에 끼고 개천을 뛰어넘었는데, 어느새 어머니 옆에 오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때가 745년(경덕왕 4) 사월초파일이었다고 한다. 경덕왕이 관음보살의 영험을 듣고 전답과 재폐(財幣)를 이 절에 하사하였다. 그러나 그 뒤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 - 『삼국유사』

  • -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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