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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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경주 흥륜사지
경주 흥륜사지
불교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아도가 창건한 사찰.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경주 흥륜사지(慶州 興輪寺址)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사정동 281-1번지
내용 요약

흥륜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아도가 창건한 사찰이다. 신라 최초의 가람이며, 사지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온 최초의 승려 아도가 창건한 사찰이라 전하며, 이차돈의 순교와 함께 신라의 대가람으로 중창되었다. 진흥왕은 이 절을 ‘대왕흥륜사’라 하고, 만년에 스스로 삭발하여 법운이라는 법명을 받고 이 절의 주지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화재로 소실된 뒤 폐사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국내에서 유일한 인면문(人面文) 와당(瓦當)은 ‘미소짓는 얼굴’을 기와에 조각한 것이다.

목차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아도가 창건한 사찰.
내용

신라 최초의 가람(伽藍)이며, 사지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온 최초의 승려 아도(阿道)가 창건한 사찰이라 전하며, 이차돈(異次頓)의 순교와 함께 신라의 대가람으로 중창되었다. 527년(법흥왕 14)에 이차돈이 순교하자 나라 사람들은 이 이적(異蹟)에 놀라고 또 슬퍼하여, 그를 위하여 절을 짓고 천경림(天鏡林)의 공사를 다시 진행시켜 544년(진흥왕 5) 2월에 완공하였다.

진흥왕은 이 절을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 하고, 그 해 3월 백성들이 출가하여 승니(僧尼)가 되는 것을 허락하는 한편, 궁중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절에 머무르게 하였다. 또한, 진흥왕은 만년에 스스로 삭발하여 법운(法雲)이라는 법명(法名)을 받고 이 절의 주지가 되었다. 그 뒤 이 절은 대법회(大法會)를 주관하는 도량이 되었고, 왕실과 국가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영험의 가람으로 존중되기도 하였다. 불국사석굴암을 창건한 김대성(金大城)이 전생에 밭을 보시한 절도 흥륜사였고, 김현(金現)이 호랑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 절이었다. 또한, 민간에서는 매년 4월 초파일부터 보름까지 이 절의 탑을 돌면서 염불을 하는 복회(福會)를 열기도 하였다.

이 절의 오당(吳堂)에는 미륵삼존불상이 있었는데, 이는 선덕여왕 때의 승상 김양도(金良圖)가 조성하여 봉안한 것이다. 금당(金堂)에는 신라 십성(新羅十聖)의 상을 그린 벽화가 있었다. 동쪽 벽에는 아도 · 이차돈 · 의상(義湘) · 혜숙(惠宿) · 안함(安含)이, 서쪽 벽에는 표훈(表訓) · 원효(元曉) · 자장(慈藏) · 혜공(惠空) · 사파(蛇巴) 등의 상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금당의 좌우로는 행랑(行廊)이 있었고, 좌경루(左經樓)와 남지(南池) 및 탑이 있었다. 흥륜사의 남문은 길달문(吉達門)이라고 불렀는데, 귀교(鬼橋)를 만들었던 비형(鼻荊)의 무리 가운데 길달(吉達)이라는 귀신이 지었다고 해서 그와 같이 불렀다고 한다. 황룡사(皇龍寺) · 사천왕사(四天王寺)와 함께 거대한 규모였으나, 신라 말에 반군(叛軍)의 방화(放火)로 남문과 낭무(廊廡)가 불타버렸다.

921년(경명왕 5) 정화(靖和) · 홍계(弘繼) 두 승려가 기부금을 모아 중수하려 하였을 때, 제석천(帝釋天)이 절의 경루에 내려와 열흘을 머물었으며, 절에 향기가 가득하고 오색구름이 뒤덮자 사람들이 옥과 비단 등을 시주하고, 공장(工匠)들이 스스로 와서 며칠 만에 수리를 끝마쳤다고 한다. 중수 후 제석천이 다시 하늘로 가려 할 때 그 모습을 그려 모시고자 하였으나 제석천은 자신의 원력(願力)이 보현보살(普賢菩薩)보다 못하다고 하면서 보현의 상을 그리도록 하였으므로, 두 승려는 받들어 보현보살의 상을 벽 사이에 그렸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화재로 소실된 뒤 폐사가 되었으며, 유물로는 석조(石槽)와 배례석(拜禮石)이 남아 있었으나, 이것 또한 경주 부윤 이필영(李必榮)에 의하여 동헌(東軒)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중 석조는 신라의 유물 중 가장 큰 석조인데, 길이 2.3m, 너비 1.1m이다. 또한, 이곳에서 출토된 국내에서 유일한 인면문(人面文) 와당(瓦當)은 미소짓는 얼굴을 기와에 조각한 것으로, 일본인에 의하여 일제 때 반출되었다가 1972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이 절에 대한 발굴작업은 1972년과 1977년 6월에 실시되어 금당지 부근 일부가 발굴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의 폐사(廢寺)』 Ⅰ(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4)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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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장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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