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륜사 금당에 봉안된 신라십성 중의 한 사람이다. 성은 김씨. 『해동고승전』에 의하면 영민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일찍부터 뜻을 나라 밖에 두었다.
600년(진평왕 22)에 고승 혜숙(惠宿)과 함께 이포진(泥浦津)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다가 섭도(涉島) 근처에서 풍랑을 만나 되돌아왔다. 이듬해 칙명을 받고 법사가 되어 중국 사신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대흥사(大興寺)에 머물렀다.
그 뒤 십승(十乘)의 비법(秘法) 및 현의(玄義)와 진문(眞文)을 5년 동안 배우고 605년(진평왕 27)우전국(于闐國) 사문 비마진제(毗摩眞諦)·농가타(農加陀) 등과 함께 귀국하였다. 서역(西域)의 승려들이 신라에 들어온 것은 이 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황룡사에 머물면서 『전단향화성광묘녀경』을 번역하였으며 승려 담화(曇和)가 필수(筆受)하였다. 만선도량(萬善道場)에서 입적하였다. 한림 설모(薛某)가 왕명을 받들어 비문을 지었다. 저서로는 참서(讖書) 1권을 지어 견문한 바를 기록하였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또한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 1권이 있다. 그를 『삼국유사』 황룡사구층탑조에 기록된 안홍과 동일인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