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삼국시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고구려의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반면, 『삼국사기』에는 아도가 비처왕(毗處王) 때 활동한 인물이라 하였다. 『해동고승전』에서는 신라 법흥왕 때 활동한 인물이라고 하면서, "본래 천축 사람이라고도 하고, 혹은 오나라에서 왔다고도 하며, 혹은 고구려에서 위나라로 들어갔다가 뒤에 신라로 돌아왔다고도 하지만 어느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주요 활동
고구려에서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승려가 많았는데, 그러한 승려들을 통칭하여 아도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 불교를 전했다고 하는 이도 아도이다. 눌지왕(재위 417~458) 때 신라에 불교를 전한 승려로 묵호자(墨胡子)가 있는데, 묵호자 또한 고유 이름이 아니고 승려의 생김새를 보고 지은 이름으로 보인다.
비처왕 때 왔다고 하는 아도는 시자 3인과 함께 모례(毛禮)의 집에 머물며 불법을 전했다. 불교는 불법승 3보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승가의 최소 단위가 4인 승가다. 아도와 시자 3인은 불충분하지만 4인 승가에 해당된다.
미추왕 때의 아도는 신라에서 처음 불법을 펼치려고 하자, 세상에서 전에 보지 못한 것이라고 하여 꺼리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런데 아도가 신라에 들어온 지 3년이 지났을 때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이 났다. 무의(巫醫)도 고치지 못한 것을 아도가 궁궐에 들어가 고치자, 왕이 그를 인정하여 흥륜사를 짓는 일도 허락했다. 그러나 미추왕이 죽은 후 사람들이 다시 해치려고 하자, 모례의 집에 굴을 파고 숨어 살다가 죽었다. 흥륜사는 이후 이차돈의 순교로 다시 지어졌다. 아도가 머물렀던 모례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 나중에 도리사가 세워졌다. 경상북도 구미시의 도리사에는 1655년(효종 6)에 건립된 「아도화상사적비(阿度和尙事蹟碑)」가 있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세 성인으로 아도, 법흥왕, 이차돈을 든다. 『삼국유사』 「흥법(興法)」 편에 의하면, 흥륜사 금당에 흙으로 만든 10성의 진흙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하는데, 아도가 맨 처음 언급되어 있다.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단행본
- 신종원, 『신라불교의 개척자들』(글마당, 2016)
논문
- 박미선, 「5세기 신라의 대고구려관계와 왕실의 불교 인식 변화」(『신라사학보』 50, 신라사학회, 2020)
- 신선혜, 「신라 중고기 불교교단 연구」(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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