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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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상원사 영산전 제석천상
평창 상원사 영산전 제석천상
불교
개념
불교에서 도리천의 왕을 의미하는 수호신.
내용 요약

제석천은 불교에서 도리천의 왕을 의미하는 수호신이다. 석제환인다라, 석가제바인다라를 줄여 제석천이라 하였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고, 그 정상에 도리천이라는 하늘이 있다고 한다. 도리천의 수호신인 제석은 불법을 옹호하며,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제석신앙은 ‘하늘’에 대한 외경 심리와 결부된다. 막연한 숭배의 대상이었던 하늘에 제석천이 있다는 불교신앙이 도입되면서 민간신앙은 이론의 근거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고대 한국인들은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하나로 보았다.

목차
정의
불교에서 도리천의 왕을 의미하는 수호신.
내용

범어로는 샤크로데반드라(S'akrodevandra)이며,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라고 쓰던 것을 줄여 제석천이라 하였다. 그가 머무르는 곳은 주1이다.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주2이 있는데 그 정상에 도리천이라는 하늘이 있다고 한다. 제석은 주3에 머무르면서 사천왕(四天王)과 주위의 32천왕(天王)을 통솔한다.

그는 불법을 옹호하며,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주4의 군대를 정벌하기도 한다. 그의 무기는 그물인데, 이것을 인다라망(因陀羅網)이라고 하여 세간의 얽히고 설킨 인과에 비유한다. 원래 인도의 신격 가운데 인드라(Indra)가 불교의 변화를 보인 한 예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 이름이 단군신화에도 나타난다. 즉, 단군의 할아버지를 묘사할 때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표기하였다. 그리고 자장(慈藏)이 당나라에 유학하였을 때 중국 청량산(淸凉山)을 참배하였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제석천왕이 석공(石工)을 데리고 와서 조성한 문수상(文殊像)이라는 기록이 있다.

또, 선덕여왕이 죽기 전에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유언하였는데 뒤에 사천왕사(四天王寺)가 그 왕릉 밑에 건립되어 그 예언이 맞았다는 기사가 있다. 왜냐하면 사왕천(四王天)의 위가 도리천이기 때문에 여왕은 죽기 전에 묻힐 곳을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제석신앙은 ‘하늘’에 대한 외경 심리와 결부된다. 불교가 도입되기 이전 막연하게 숭배의 사상이 되었던 하늘에 제석천이 있다는 불교신앙이 도입되면서 그 민간신앙은 이론의 근거를 갖게 된다.

따라서 고대 한국인들은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하나로 보았다. ‘한울님’에 관한 원초적 신앙은 유일 창조주를 부정하는 불교의 입장과 위배되었기 때문에 다만 민간신앙으로만 유포되었다. 제석천의 조상(彫像)은 석굴암의 석실에 조성되어 대범천(大梵天)과 나란히 모셔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태조가 919년(태조 2)에 송악으로 도읍을 옮기고 법왕사(法王寺) 내제석원(內帝釋院) 등 10대사찰을 건립하였다. 925년에도 외제석원(外帝釋院)을 건립하였으며, 928년에도 제석원을 설치하였다. 1032년(덕종 1) 외제석원에서 왕이 재를 베풀었고, 1060년(문종 14) 정월에는 천제석도량을 문덕전(文德殿)에서 베풀었다.

1085년(선종 2)에도 천제석도량을 문덕전에서 베풀었고, 1098년(숙종 3)에는 왕이 외제석원에 행차하여 재를 베풀었으며, 1099년 정월과 1101년 정월에 천제석도량을 문덕전에서 베풀었다.

이를 통하여 고려에서는 매년 정월에 제석도량을 베푼 것을 알 수 있다. 1107년(예종 2) 정월과 1110년 정월에도 제석도량을 문덕전에서 베풀었고, 1114년 4월에는 예종이 외제석원에 행차하여 공양하였으며, 1130년(인종 8) 정월에는 제석도량을 중화전(重華殿)에서 베풀었다.

1132년 2월에는 천제석도량을 명인전(明仁殿)에서 베풀었고 1148년(의종 2) 정월에는 제석도량을 문덕전에서 베풀었으며, 1176년(명종 6)에는 천제석도량을 명인전에서 베풀고, 1177년 3월에는 제석도량을 내전에서 베풀었으며, 1181년 3월에 제석도량을 명인전에서 베풀었다.

1203년(신종 6) 정월에는 제석도량을 수문전(修文殿)에서 베풀었고 1214년(강종 4) 정월에도 제석도량을 수문전에서 베풀었으며, 같은 해 3월에는 제석재를 행하였다.

1223년(고종 10)에 제석도량을 수문전에서 베풀었고, 1251년에는 천제석도량을 궐안에서 베풀었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에는 제석천에 대한 호국진병(護國鎭兵)의 신앙의식이 많이 행하여졌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주석
주1

육욕천의 둘째 하늘. 섬부주 위에 8만 유순(由旬) 되는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곳으로, 가운데에 제석천이 사는 선견성(善見城)이 있으며, 그 사방에 권속되는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는 8개씩의 성이 있다고 한다.    우리말샘

주2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앙에 있다는 산. 꼭대기에는 제석천이, 중턱에는 사천왕이 살고 있으며, 그 높이는 물 위로 팔만 유순이고 물속으로 팔만 유순이며, 가로의 길이도 이와 같다고 한다. 북쪽은 황금, 동쪽은 은, 남쪽은 유리, 서쪽은 파리(玻璃)로 되어 있고, 해와 달이 그 주위를 돌며 보광(寶光)을 반영하여 사방의 허공을 비추고 있다. 산 주위에 칠금산이 둘러섰고 수미산과 칠금산 사이에 칠해(七海)가 있으며 칠금산 밖에는 함해(鹹海)가 있고 함해 속에 사대주가 있으며 함해 건너에 철위산이 둘러 있다.    우리말샘

주3

수미산의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제석천이 머무는 천궁(天宮).    우리말샘

주4

팔부중의 하나.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 항상 제석천과 싸움을 벌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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