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신라 진평왕 이전에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왔을 때 목욕한 동천(東泉)에 건립한 사찰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동해의 용왕이 이 절에 자주 와서 법문을 들었고, 진평왕이 오백성중(五百聖衆)의 봉안과 함께 오층탑을 세웠으며 전답을 헌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경주에는 세 마리의 호국룡(護國龍)이 살고 있는 우물이 셋 있었는데, 이 절에 있는 청지(淸池)와 동지(東池), 분황사(芬皇寺)의 우물 등이다.
설화에 의하면 하서국(河西國)의 사람이 이들 우물에 있는 용을 고기로 변하게 하여 잡아갔다가 뒤에 다시 놓아주었다고 하여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이라 불렀다 한다.
분황사의 우물은 지금도 남아 있으나 동천사의 청지와 동지는 확인할 수 없다. 현재 절터에는 석탑의 부재들과 석조물이 흩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