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 벽암 각성이 중건한 사찰건물. 불전.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동현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정측면 미디어 정보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정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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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 벽암 각성이 중건한 사찰건물. 불전.

내용

1987년 보물옹진백령도남포리콩돌해안.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사모지붕건물이다.

공포는 내외삼출목(內外三出目)으로 처마가 깊게 숙여서 건물 전체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듯이 보인다.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마루가 한곳에 모여 있으며, 그 정상에 석조로 만든 절병통이 놓여 있다.

이것은 김제 금산사 대장전(보물, 1985년 지정)에서 볼 수 있었던 석조물로 그 형상이 아주 고격(古格)이다. 또 정방형(正方形)이지만 정면 3칸이 측면 3칸보다 약 2자 정도 큰데, 이것은 정확한 정방형일 때 일어나는 착시 현상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건물 내부에는 4개의 기둥이 네 귀퉁이마다 서 있어 이것을 4천주(天柱)라고도 부른다. 이는 추녀 뒷몸을 결구하기 위한 것인데, 뒤편의 두 기둥을 이용하여 후불벽을 만들었다. 후불벽 아래에 불단(佛壇)을 배치하고, 그 위에 2.8m 크기의 목조 관세음보살좌상(觀世音菩薩坐像)을 모셨다.

그 위에 닫집은 생략하였고 천장은 우물반자이다. 이 사찰은 553년(진흥왕 14)에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1624년(인조 2)에 벽암대사(碧巖大師) 각성(覺性)에 의해 중건되었다. 1974년에는 해체하여 완전 복원하였다.

참고문헌

  • - 『국보』Ⅰ 증보(신영훈 외, 예경산업사, 1990)

  • - 『법주사』(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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