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거북·봉황과 함께 사령(四靈)이라 하며,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되었다.
일찍이 중국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누각을 세워 이를 ‘기린각(麒麟閣)’이라고 하고, 공신 11인의 상을 각상(閣上)에 건 이래, 남아는 국가에 공훈을 세워 자기의 화상이 기린각에 걸리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쓸데없고 보람없게 된 처지를 ‘성인 못 된 기린’이라는 속담으로 표현하며, 자질이 우둔하여 장래 기대할 것이 없을 때도 ‘우마(牛馬)가 기린되랴.’라는 속담을 쓴다.
또한, 재주와 기예가 뛰어난 아이를 ‘기린아(麒麟兒)’라고 일컫는다. 이처럼 기린은 상서롭고 뛰어난 동물로서 신성시되어 상서로운 장식무늬로도 쓰였다. 신라시대의 기와 출토물에도 조각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동경의 뒷면에도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흉배의 문양으로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