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성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남양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만기(萬基)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 사망 연도1671년(현종 1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남양부사|동부승지|형조참의
  • 출생 연도1621년(광해군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박세성 글씨 미디어 정보

박세성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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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남양부사, 동부승지,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만기(萬基). 박응천(朴應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동민(朴東民)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박환(朴煥)이며, 어머니는 부안임씨(扶安林氏) 임선(林宣)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을 거쳐 홍문관정자·예문관검열·봉교 등을 역임하였다. 1653년 겸설서(兼說書)·전적·감찰·정언 등을 역임하고, 그 뒤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이어 필선(弼善)·병조정랑·수리도감도청장령·군기시정·보덕·헌납·삭녕군수(朔寧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1660년(현종 1) 동부승지로 있을 때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제문제로 서인 송시열(宋時烈) 등과 의견대립이 되어 있던 윤선도(尹善道)를 두둔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하고 문외출송(門外黜送)이 되었다.

1665년 판결사(判決事)를 거쳐 남양부사·동부승지·형조참의·우부승지·호조참의·양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단아한 인품에 겸손하였고 신중하고 의리로써 모든 일에 대처하였다.

참고문헌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서계집(西溪集)』

  • - 『남계집(南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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