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연산군에게 미움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중종 즉위 이후 복직하였으나, 갖은 행패로 파직된 환관 · 공신.
이칭
이칭
진천군(鎭川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관련 사건
갑자사화
목차
정의
조선 전기에, 연산군에게 미움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중종 즉위 이후 복직하였으나, 갖은 행패로 파직된 환관 · 공신.
생애 및 활동사항

성종 때에 궁중에 들어가서 연산군과 중종을 섬겼다. 연산군에게는 미움을 받아 태장(笞杖)을 여러 차례 당하였는데, 이유는 술을 마시고, 봉교(奉敎)를 받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갑자사화가 일어난 1504년(연산군 10)에 운봉으로 부처되고, 이어서 거제도·제주도로 이배되면서 심한 형벌을 받았다. 중종이 즉위하여 이를 불쌍히 여겨 정난공신(定難功臣) 2등에 책록하고 진천군(鎭川君)에 봉하였으며, 노비 12명을 내려주었다.

국왕의 은총을 빙자하여 노비 13명을 더 모점(冒占)하는 등 행패가 심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510년(중종 5) 다시 서용되어 국왕의 특별한 은총을 받았는데, 1517년 이어소(移御所: 임금이 거처를 옮긴 곳) 입구를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이를 제지하는 당직군사를 구타하여 다시 대간에 의하여 탄핵을 받아 직첩(職牒: 관원의 임명사령장)을 빼앗기고 궁궐에서 추방되었다.

참고문헌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중종실록(中宗實錄)』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