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해인총림 초대 방장, 조계종 제7대 종정 등을 역임한 승려.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해인사 백련암에서 혜일(慧日)을 은사로 모시고 수계 · 득도한 뒤, 10년간 금강산 마하연사, 수덕사의 정혜선원, 천성산 내원사, 통도사의 백련암 등에서 안거를 지냈다. 1940년 29세 되던 해에 동화사 금당에서 동안거 중 견성하고, 1941년부터 1963년까지 송광사, 파계사 성전암, 봉암사, 묘관음사, 문수암 천제굴 등에서 수십 회 안거를 지냈다.
1965년 문경 김룡사(金龍寺) 하안거 때는 첫 대중법문으로, 『육조단경』, 『금강경』, 「증도가」 및 중도이론을 설법하였다. 1966년 해인사 백련암으로 옮겨가 주석하였고, 1967년에는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였다.
방장 취임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門)’을 설하였는데, 이것은 불교의 중심 사상인 중도사상을 체계화한 것이다. 1981년조계종 제7대 종정으로 추대되었으나 추대식에 참여하는 대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발표하였다.
성철은 평소 제자들을 직접 지도하면서 잠을 적게 잘 것, 말하지 말 것, 책을 보지 말 것, 간식을 먹지 말 것, 돌아다니지 말 것 등을 권하였다. 성철 자신도 청빈하게 생활하며 소금기 없는 음식을 먹고 작은 암자에서 살았다.
학문세계와 사상
1976년 『한국불교의 법맥』을 출간하여 조계종 법맥을 밝혔고, 1981년 『선문정로(禪門正路)』를 비롯하여, 1982년 『본지풍광(本地風光)』, 『돈오입도요문돈』, 1986년 『신심명증도가』, 1987년 『자기를 바로 봅시다』, 『(돈황본)육조단경』, 1988년 『영원한 자유』, 1992년 『백일법문』, 1993년 『선문정로평석(禪門正路評釋)』 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또 그의 지도하에 선림고서총서 전 37권을 번역 · 발간하였다.
1993년 11월 4일 열반하였으며, 다비 후 진신사리가 수습되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고경』(장경각, 1994)
- 『성철큰스님』(주명덕·원택, 장경각, 1993)
- 『본지풍광』(성철, 불광출판사, 198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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