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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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부 경전 가운데 독립적으로 유통되는 대표적 경전 중 하나로서 현장(玄奘, 602~664)이 번역한 『대반야경(大般若經)』 600권 중 제9회 제577권 「능단금강분」의 별역인 불교 문헌.
이칭
이칭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문헌/고서
편찬 시기
고대-삼국|고려|조선
내용 요약

『금강경(金剛經)』은 대승불교 초기의 공(空) 사상을 담고 있는 반야 계통의 경전이다. 대략 2세기 무렵 인도에서 성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동아시아에 널리 유포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의 불교 유입 초기에 전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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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반야부 경전 가운데 독립적으로 유통되는 대표적 경전 중 하나로서 현장(玄奘, 602~664)이 번역한 『대반야경(大般若經)』 600권 중 제9회 제577권 「능단금강분」의 별역인 불교 문헌.
개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고 신봉되었던 대표적인 불경으로 주4 혹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불교 유입 초기에 전래되었으며, 고려 중기에 지눌(知訥)이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법(立法)을 위해서 반드시 이 경을 읽게 한 뒤부터 널리 유통되었다. 선종에서도 중국 선종의 제5조인 홍인(弘忍) 이래 특히 중요시되었고, 제6조 주3은 이 경문을 듣고 발심(發心)하여 출가하였다고 한다.

이 경은 공한 지혜[空慧]로써 그 근본을 삼고, 일체법무아(一切法無我)의 이치를 요지로 삼았다. 의 사상을 설명하면서도 경전 중에서 공이라는 말이 한마디도 쓰여지지 않은 것이 특징이며, 대승주5이라는 두 관념의 대립이 성립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과도기적인 경전이라는 데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내용

경의 해석과 이해를 위해서 인도의 무착(無着)은 십팔주위(十八住位)로 과판(科判)하였고, 천친(天親)은 이십칠단의(二十七斷疑)로, 중국 양나라의 소명 주6는 삽십이분(三十二分)으로 나누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소명 태자의 분류를 따르고 있다. 삽십이분 중 이 경의 중심 사상을 담고 있는 분은 제3·4·5·7·10·18·23·26·32분이다.

제3의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서는 보살중생을 제도하되 내가 저들을 제도하였다는 관념이 없어야 하고, 아상(我相) · 주7 · 주8 · 주9의 4상이 있는 이는 보살이 아니라 하였다.

제4의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에서는 집착함이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도록 가르쳤다.

제5의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에서는 32상을 갖춘 부처의 육신이 영원한 진리의 몸인 법신(法身)이 아님을 밝히고, 참된 불신(佛身)은 무상(無相)이라고 설한다. 특히, “무릇 있는 바 상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라고 한 유명한 주1가 수록되어 있어 더욱 중요시된다.

제7의 「무애무설분(無碍無說分)」에서는 부처의 설한 바 법이 취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법도 아니요, 법 아닌 것도 아니라 하여 여래의 설법에 대한 집착을 끊게 하였다.

제10의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에서는 청정한 마음으로 외적인 대상에 집착함이 없이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 것〔應無所住而生其心〕’을 가르친다. 이는 혜능 및 여러 고승들을 깨닫게 한 유명한 구절이다.

제18의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에서는 부처가 모든 중생의 차별적인 마음의 움직임을 모두 알고 있음과 과거 · 현재 · 미래의 마음은 가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제23의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에서는 진여법(眞如法)이 평등하여 아래위가 없는 것이 온전한 깨달음이며 여래의 선법(善法)임을 밝혔다.

제26의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에서는 여래를 형체에 얽매어 보지 말 것과 “만약 형색으로 나를 보고,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주2 를 행함이니,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한다.”는 사구게를 설하고 있다.

제32의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에서는 일체의 주10 · 환영 · 물거품 · 그림자와 같고 이슬이나 우뢰와 같음을 관해야 한다고 하였다.

서지적 사항

이 경전 범어 원전의 사본은 티베트 · 중국 · 한국 · 일본에 전하고 있으며, 한역본의 경우 요진(姚秦)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의 역본을 최초로 하여 당(唐) 의정(義淨, 주11의 역출(譯出)까지 총 6종이 한역되어 유통되었다.

이 경에 대한 주석서를 쓴 이는 800여 명에 이른다고 하며, 현재 인도본 5종, 중국본 122종, 한국본 14종, 일본본 61종의 저서명이 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기화(己和)『금강경오가해설의』는 저술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불교 강원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의 저작 이후 수많은 판본이 간행되었는데, 현재 알려진 것만 10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되거나 역간(譯刊)된 관계 문헌은 약 50여 종에 이르며, 1945년 이후 지금까지 약 50여 종 이상의 해설서가 출간되었다. 또한, 이 경은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 한국불교태고종 · 대한불교총화종에서 근본 경전으로 채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26개의 불교 단체에서 필독의 경전으로 존숭되고 있다.

『금강경』의 판본과 목판 중 간기가 뚜렷한 것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다음 [표 1] 및 [표 2]와 같다.

[표 1] 금강경 목판 현황

간 행 연 대 간 행 처 판수 비 고
1214년(貞祐2) 합천 해인사(海印寺) 6 신기(迅機)의 지문(誌文) 수록.
1237년(정유) 합천 해인사(海印寺) 16 최우(崔瑀)의 발원문(發願文) 수록.
1245년(을사) 합천 해인사(海印寺) 6 정안(鄭晏)의 지문(誌文) 수록.
1575년(萬曆3) 능성 쌍봉사(雙峰寺) 33 오가해(五家解), 결판
1618년(萬曆46) 승주 송광사(松廣寺) 12 1판결
1665년(康熙4) 순천 흥국사(興國寺) 113 오가해(五家解), 결판
1679년(康熙18) 울산 운흥사(雲興寺) 127 오가해(五家解), 통도사 소장
1718년(무술) 구례 화엄사(華嚴寺) 13
1721년(康熙60) 고성 운흥사(雲興寺) 15
1726년(雍正4) 남해 영장사(靈藏寺) 15 남해 화방사(花芳寺) 소장
1740년(乾隆5) 자안 반룡사(盤龍寺) 10 표충사(表忠寺) 소장, 결판
1740년(乾隆5) 은점산 답장암(畓藏庵) 14 기림사(祇林寺) 소장
1768년(乾隆33) 양주 불암사(佛巖寺) 8
1903년(光武7) 양산 통도사(通度寺) 14
1926년 고성 옥천사(玉泉寺) 14
1938년 통영 용화사(龍華寺) 16
1959년 영구암(靈龜庵) 15 해인사 소장
(?) 충남 신안사(身安寺) 62 간기판(刊記板) 없음.
(?) 양주 불암사(佛巖寺) 9 간기판 없음.
(?) 양주 불암사(佛巖寺) 18 간기판 없음. 언해
(?) 양주 불암사(佛巖寺) 9 간기판 없음.
(?) 백양사(白羊寺) 12
(?) (?) 14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표 2] 금강경 목판본 현황

간 행 연 월 개 판 처 비 고
1214년(貞祐 2) 10월 (?)
1311년(至大 4) 5월 (?)
1357년(至大 17) 6월 (?)
1363년(至大 23) 남원 개판
1387년(洪武 20) (?) 이색(李穡)의 발문(跋文) 수록.
1414년(永樂 22) 고산 안심사(安心寺)
1415년(永樂 23) 5월 (?) 성거(省琚)가 판각용 정서본(精書本)을 필서(筆書)함.
1440년(正統 5) 화악산 영제암(永濟庵)
1442년(正統 7) 7월 양산사(陽山寺)
1462년(天順 6) 7월 고산 화암사(花巖寺)
1464년(天順 8) 6월 경주 천룡사(天龍寺)
1469년(成化 5) 안성 천룡사(天龍寺)
1474년(成化 10) 광양 백운사(白雲寺)
1488년(弘治 1) 4월 고산 화암사(花巖寺)
1525년(嘉靖 4) 자비산 심원사(深源寺)
1530년(嘉靖 9) 안동 광흥사(廣興寺)
1537년(嘉靖 16) 5월 금산 신안사(身安寺)
1557년(嘉靖 36) 서흥 귀진사(歸眞寺)
1558년(嘉靖 37) 천안 광덕사(廣德寺)
1564년(嘉靖 43) 3월 구월산 패엽사(貝葉寺)
1565년(嘉靖 44) 5월 순창 무량사(無量寺)
1569년(隆慶 3) 4월 나주 동원사(同願寺)
1570년(隆慶 4) 6월 안동 광흥사(廣興寺)
1575년(萬曆 3) 고산 광제원(廣濟院)
1576년(萬曆 4) 4월 장연 천불사(千佛寺)
1618년(萬曆 46) 조계산 송광사(松廣寺)
1632년(崇禎 5) 9월 삭령 용복사(龍腹寺)
1634년(崇禎 7) 안변 석왕사(釋王寺)
1635년(崇禎 8) 8월 태인 용장사(龍藏寺)
1643년(崇禎 16) 영광 봉정사(鳳停寺)
1646년(順治 3) 12월 해남 대흥사(大興寺)
1665년(康熙 4) 순천 흥국사(興國寺)
1679년(康熙 18)12월 울산 운흥사(雲興寺)
1680년(康熙 19) 6월 영변 보현사(普賢寺)
1681년(康熙 20) 원적산 운흥사(雲興寺)
1694년(康熙 33) 모악산 금산사(金山寺)
1701년(康熙 40) 4월 문경 봉암사(鳳巖寺)
1740년(乾隆 5) 자인 반룡사(盤龍寺)
1740년(乾隆 5) 5월 양주 불암사(佛巖寺)
1746년(乾隆 11) 7월 고산 운문사(雲門寺)
1796년(嘉慶 병진) 양주 불암사(佛巖寺)
1797년(嘉慶 정사) 양주 불암사(佛巖寺)
1867년(同治 6) 금강산 신계사(神溪寺)
1869년(同治 8) 광주 봉은사(奉恩寺)
1869년(同治 8) 천마산 보광사(寶光寺)
(?) 전주 원암사(圓巖寺)
참고문헌

단행본

이지관, 『한국불교소의경전연구』(보련각, 1973)
박상국, 『전국사찰경판조사보고서』(문화재관리국, 1987)
주석
주1

네 구(句)로 이루어진 고대 인도 시의 한 형식. 한 구는 8음절로 되어 있으므로, 시 한 편의 음절 수는 32개이다. 우리말샘

주2

보기에 하는 행동이 바르지 못하고 나쁘다. 우리말샘

주3

중국 당나라의 승려(638~713). 속성은 노(盧). 시호는 대감 선사(大鑑禪士). 육조 대사(六祖大師)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제6조로서, 남선종(南禪宗)이라는 파를 형성하였으며, 그의 설법을 기록한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전한다. 우리말샘

주4

지혜의 정체(正諦)를 금강의 견실함에 비유하여 해설한 불경으로 우리나라 조계종의 기본 경전. 우리말샘

주5

수행을 통한 개인의 해탈을 가르치는 교법. 석가모니가 죽은 지 약 100년 뒤부터 시작하여 수백 년간 지속된 교법으로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이 있다. 소극적이고 개인적인 열반만을 중시한 나머지, 자유스럽고 생명력이 넘치는 참된 인간성의 구현을 소홀히 하는 데에 반발하여 대승이 일어났다. 우리말샘

주6

중국 남조 시대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황태자(501~531). 성은 소(蕭). 이름은 통(統). 자는 덕시(德施). 소명은 시호. 불교를 숭상하고 문학을 좋아하였다. 저서에 ≪정서(正序)≫ 10권, ≪영화집(英華集)≫ 20권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7

사람 얼굴의 생김새. 또는 그 얼굴의 근육이나 눈살 따위. 우리말샘

주8

사상(四相)의 하나. 중생이 자신의 몸을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참된 실체라고 고집하는 잘못된 견해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9

사상(四相)의 하나.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생각이나 태어날 때 일정한 목숨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10

인연에 의하여 생멸하는 만유일체의 법. 우리말샘

주11

중국 당나라의 승려(635~713). 671년 인도로 건너가 날란다에서 불교의 오의(奧義)를 닦고, 695년에 범본 불전(梵本佛典) 406부를 가지고 돌아왔다. 화엄경, 유식(唯識), 밀교(密敎) 따위의 불전을 번역하였다. 저서로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 ≪대당서역구법고승전≫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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