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두륜산(頭輪山)에 있는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지는 사찰.
개설
창건과 사찰명
해남 대흥사의 사찰명은 조선시대 문헌에서 ‘대흥사’와 ‘대둔사’ 둘 다 확인된다. 조선 전기 기록에는 ‘대둔사’라 되어 있으며, 17세기 대흥사에서 간행한 불서의 간기에 ‘대흥사’라고 되어 있고, 18세기 이후에는 다시 ‘대둔사’라 하였다가, 19세기 후반부터 재차 ‘대흥사’의 사명을 사용하였다. 인근 마을에서는 순 우리말로 ‘한듬절’이라고도 불렀다.
고려~조선 전기
17세기 청허계의 정착
『대둔사지』 「도구록추기(道具錄追記)」에서는 “1655년(효종 6)에 허백 명조(1593~1661)가 서산대사의 옥발우를 묘향산으로부터 모시고 와서 이 절에 전하였다. 또 푸른 옥발우의 크고 작은 것 3좌, 당초무늬를 새긴 가죽신 2쌍, 서산대사 청허 휴정의 누른 비단 가사 1령을 한 때에 함께 가지고 왔다”라고 하였다. 이때 가지고 온 서산대사의 염주 2종, 금란가사, 그리고 3개의 옥바릿대와 수저가 현재 해남 대흥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허백 명조는 청허계 휴정의 제자인 사명 유정(1544~1610)의 문도로서 정묘호란 때 의승군 4,000여 명을 거느리고 안주성(安州城)을 지켰으며, 병자호란 때는 군량미를 모아서 제공하였던 의승장이었다. 그가 서산대사의 의발을 모시고 와서 정착한 이후 해남 대흥사는 청허계를 대표하는 사찰이 되었다.
18세기 표충사(表忠祠)의 공인
표충사가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기 전부터 표충사에는 원장(院長)을 두고 별도로 제향을 담당할 도유사(都有司)를 두고 있었다. 상월 새봉(1687~1767)의 행적에 따르면 1748년에 도유사가 되고 1750년에 원장에 임명되었으며, 해남 대흥사의 고문서에 따르면 새봉의 제자 응운 등오는 1774년에 도유사가 되고 1790년에 원장에 임명되었다.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은 표충사의 초대 원장에 1789년에 연담 유일(1720~1799)이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고, 황해도 백천 호국사에 주석하고 있던 천봉 태흘(1710~1793)이 8월에 부임하였다. 표충사 원장의 임기는 대략 1년이었으며 거의 매년 전국에서 명망 있는 승려들이 부임하였다. 표충사 원장의 출신지는 전라도에 주석하던 승려가 많긴 하지만 강원도(현, 강원특별자치도), 황해도, 경상도 등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다. 이는 해남 대흥사가 청허계의 종원(宗院)으로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세기 중창과 사지(寺誌)의 편찬
『대둔사지』 편찬은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완호 윤우, 아암 혜장(1772~1811), 초의 의순(1786~1866) 등에 의해 4권 2책으로 1818년경에 편찬되었다. 권1에서는 해남 대흥사의 연혁과 12종사 · 12강사에 대해 서술하고, 권2에서는 중관 해안이 1636년에 해남 대흥사의 역사를 기술한 『죽미기(竹迷記)』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음을 비판하면서 전각의 건립 등을 실증적으로 기술하였으며, 권3에서는 서산대사의 행적을 정리하고 표충사 설립과 관련한 자료 및 경위들을 소개하였고, 권4에서는 정약용이 저술한 『대동선교고(大東禪敎考)』를 싣고 있다.
13대 종사(宗師)와 13대 강사(講師)
13종사는 풍담 의심(1592~1665) - 취여 삼우(1622~1684) - 월저 도안(1638~1715) - 화악 문신(1629~1707) - 설암 추붕(1651~1706) - 환성 지안(1664~1729) - 벽하 대우(1676~1763) - 설봉 회정(1677~1738) - 상월 새봉(1687~1767) - 호암 체정(1687~1748) - 함월 해원(1691~1770) - 연담 유일 - 초의 의순이다.
13강사는 만화 원오(1694~1758) - 연해 광열 – 영곡 영우 – 나암 승제 – 영파 성규(1728~1812) - 운담 정일(1741~1804) - 퇴암 태관 – 벽담 행인(1721~1798) - 금주 복혜 – 완호 윤우 – 낭암 시연 – 아암 혜장 - 범해 각안(1820~1896)이다.
일제강점기 대흥사
가람의 구조와 중요문화유산 해남 대흥사 북미르암 마애여래 좌상
해남 대흥사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 가운데 국가문화유산으로는 국보가 1점, 보물이 11점이 지정되어 있고,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6점,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2점이 지정되어 있다. 해남 대흥사에는 국보로는 고려 초 11세기에 조성된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보물로는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가지고 있는 대흥사 삼층석탑, 고려 전기에 조성된 북미륵암 삼층석탑, 조선 전기에 제작된 금동 관음보살 좌상이 있다. 서산대사와 관련하여 서산대사 유물, 금동관음보살좌상, 서산대사 행초 정선사가록이 있고, 불상으로 1612년(광해군 4) 석가여래삼불좌상, 불화로 1764년(영조 40) 영산회 괘불탱, 건축물로 1817년(순조 17)의 천불전이 있다. 이 외에 1561년(명종 16)에 장흥 지제산 천관사에서 판각한 『묘법연화경』 목판이 있고, 1173년(명종 3) 혹은 1223년(고종 20)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탑산사 동종이 있다.
해남 대흥사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서산대사 의발 일괄, 대웅보전, 대광명전, 용화당, 천불상, 관음보살도 등이 있고,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만일암지 오층석탑과 북미륵암동삼층석탑이 있다.
표충사는 1976년에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 권상노 편,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 (조선총독부, 1911)
- 『대둔사지(大芚寺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논문
- 김상영, 「청허 휴정의 사문상과 표충사 제향의 의의」 (『한국선학』 33, 2012)
- 이종수, 「조선후기 대둔사 현창 운동과 그 의미」 (『동국사학』 50, 2011)
인터넷 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https://kabc.dongguk.edu/)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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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국가에서 지정하여 법률로 보호하는 기념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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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훌륭하고 이름난 경치. 또는 그런 곳.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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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성유하다’의 어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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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석가모니’의 다른 이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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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스승이 제자에게 학예를 이어 전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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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가사(袈裟)와 바리때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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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임금이 사당(祠堂),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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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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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향교, 서원, 종중, 계중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우두머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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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학교나 학원 따위에서 위촉을 받아 강의를 하는 사람. 시간 강사와 전임 강사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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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각 종파의 조사(祖師).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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