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禪僧). 조선후기 대둔사(大芚寺: 현재 대흥사) 13종사(宗師) 가운데 1인이다. 호는 취여(醉如), 성은 정씨(鄭氏). 전라남도 강진(康津)보암방(寶巖坊) 출신. 어려서 출가하여 만덕산 백련사(白蓮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그 뒤 전국의 명산을 다니면서 불교를 비롯한 내외전(內外典)을 공부하였고, 해운 경열(海雲敬悅)의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아,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제자 소요 태능(逍遙太能)에서 경열로 전해진 소요파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특히, 담론(談論)을 잘하여 듣는 이들을 모두 설복시켰다고 한다.
대흥사 상원루(上院樓)에서 『화엄경』의 종지(宗旨)를 강설했을 때는 청중이 수백인이 넘었다. 그때 한 농부가 누각 아래에서 쉬다가 법문을 엿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제자로 삼아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의 가르침에 따라 농부는 과거의 업장(業障)을 참회하고 화엄(華嚴)의 묘지(妙旨)를 얻었으며, 삼우는 전법제자(傳法弟子)로 삼고 의발(衣鉢)을 전하였는데, 그가 곧 화악 문신(華岳文信)이다.
이것은 중국의 오조홍인(五祖弘忍)이 나무꾼이었던 육조혜능(六祖慧能)에게 자신의 의발을 전한 고사(故事)와 비견되기도 한다. 1684년 6월 5일 63세로 입적(入寂)하였다. 제자들은 그의 영정(影幀) 2본을 그려서, 백련사와 대흥사에 봉안하였고, 대제학 한치응(韓致應)이 쓴 비(碑)는 대흥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