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열(廣悅)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고승으로 출신 배경에 관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제자 편양 언기(鞭羊彦機)의 편양파 후손으로 대둔사(大芚寺: 현재 대흥사) 13강사 중 제2대 강사이다. 법호는 연해(燕海)이며 전라남도 해남 출신으로 두륜산(頭輪山) 대흥사에서 출가하였다. 광열은 성격이 호탕하고 인품이 뛰어나며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소탈하였다.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했지만, 도량이 깊고 원대하여 사람들이 그 마음속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한다. 선(禪)과 교(敎), 염불을 중시하는 삼문(三門) 수학의 대가로 불교학의 종주(宗主)였으며 정토신앙을 강조하였다.
광열은 영조 때의 순교승이자 대흥사 제6대 종사인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과 대흥사 제10대 종사인 호암 체정(虎岩體淨, 16871748)의 문하에 있으면서 불법을 터득하였는데, 그의 문하에는 수많은 학인들이 모여들었다고 전한다. 1775년(영조 31)에는 대흥사 제1대 강사 만화 원오(萬化圓悟, 1694~1758), 희영(稀英) 등과 함께 『관음보살예문(觀音菩薩禮文)』을 대흥사에서 간행하였다. 광열의 제자로는 은봉 두운(隱峰斗云)과 함께 만일암(挽日庵)을 중건한 자암 전평(慈庵典平) 등 12명의 문도가 있었다. 그의 부도는 두륜산의 비전(碑殿)에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