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유점사 사적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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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유점사사적기
금강산유점사사적기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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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승려 민지가 금강산 유점사의 택지 유래 · 불종 주조의 내력 등을 기록한 사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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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승려 민지가 금강산 유점사의 택지 유래 · 불종 주조의 내력 등을 기록한 사적기.
내용

『금강산유점사사적기(金剛山楡岾寺事蹟記)』는 고려 후기인 1297년(충렬왕 23) 당시의 대표적 문인이었던 민지가 금강산 유점사의 관련 사적을 모아 찬술한 사적기로 이후 조선 말기인 1871년(고종 8)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11세 법손인 건봉사의 보욱이 증보해 발간하였다.

민지는 중국 임제종 고승인 몽산 덕이(蒙山德異)의 제자 철산 소경(鐵山紹瓊)과 인도승 지공 선현(指空禪顯)을 존경하여 문도가 되어 불교와 관련된 비문과 사적기·영험기 등 여러 기록을 남겼는데 이 기문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금강산유점사사적기』에는 『화엄경(華嚴經)』에 의거해 금강산이 법기보살(法起菩薩)이 상주하는 불교적 인연의 장소라는 점, 인도에서 조성한 53불이 항해한 지 900년 만인 신라 남해왕 때에 금강산에 도착하여 유점사가 창건되었다는 사항, 불종(佛鐘)의 주조 내력 등이 기록되어 있다.

보욱은 1861년(철종 12) 건봉사 연사(蓮社)에서 「무량수경중간서(無量壽經重刊序)」를 지은 바 있는데, 1871년에 민지의 사적기를 필사한 다음 여기에 『금강산유점사속사적기(金剛山楡岾寺續事蹟記)』를 부기하였다. 그 내용은 유점사의 중건 및 중수 때 시주한 사항과 고승들이 주석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조선 전기의 시주자로는 세조와 효령대군, 예종이 있으며 조선 중기는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 조선 후기는 영조와 정조, 철종, 순종의 정비 순원왕후(順元王后) 등이 있다. 시주자에는 왕실 외에도 정난종(鄭蘭宗), 홍윤성(洪允性), 노사신(盧思愼), 한계희(韓繼熙), 김보근(金輔根), 김좌근(金左根), 이유원(李裕元) 등과 같은 유림도 기록되어 있다. 유점사에 주석한 승려로는 신의(信義), 성료(性了), 사명 유정(四溟維政), 천기 관휴(天機寬休), 보감(寶鑑) 등이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책의 끝에는 강재희(姜宰熙)가 쓴 발문이 있다.

『금강산유점사사적기』는 일제 강점기인 1915년 10월 「유점사기본(楡岾寺寄本)」이란 명칭으로 『불교진흥회월보(佛敎振興會月報)』 7호에 실렸으며, 이능화(李能和)가 1918년에 간행한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와 김탄월(金坦月)이 1942년에 편찬한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 다시 수록되었다. 현재 『금강산유점사사적기』는 동국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금강산유점사사적기(金剛山楡岾寺事蹟記)』
『금강산유점사속사적기(金剛山楡岾寺續事蹟記)』
『(가산)불교대사림: 2』(이지관,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9)
『한국사지총서: 3』(한국학문헌연구소, 아세아문화사, 1977)
『조선불교통사』(이능화, 신문관, 1918)
「민지와 유점사 오십삼불의 성립」(김민구, 『불교학보』5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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