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예빈윤, 한림직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충선왕이 세자였을 때인 1290년(충렬왕 16)에 정가신(鄭可臣)과 함께 세자를 따라 원나라에 가서 한림직학사(翰林直學士) 조열대부(朝列大夫)의 벼슬을 받았다. 1294년(충렬왕 20)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지공거(知貢擧) 안향(安珦)과 함께 과거를 주관하여 윤안비(尹安庇), 조연수(趙延壽), 이언충(李彦冲), 김광식(金光軾), 홍유(洪侑), 신천(辛蕆) 등을 선발하였다.
그 뒤 집현전대학사(集賢殿大學士) 첨광정원사(僉光政院事), 1325년(충숙왕 12)에 추성수정보리공신 삼중대광 첨의정승 우문관대제학 여흥군(推誠守正保理功臣三重大匡僉議政丞右文館大提學驪興君)에 제수되었고, 1326년(충숙왕 13)에 승진하여 판첨의부사(判僉議府事)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에 봉해졌다.
1323년(충숙왕 10)에 가락군(駕洛君) 허유전(許有全) 등과 함께 원나라에 가서 충선왕의 환국(還國)을 청하는 표문(表文)을 지었다. 이 문장은 명문으로, 그 뜻이 간절하고 때로는 애통한 느낌을 들게 하였다. 그러나 심왕(瀋王) 무리의 간계(奸計)로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학문과 저술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事節要)』
- 『고려묘지명집성(高麗墓誌銘集成)』
- 『졸고천백(拙藁千百)』
단행본
- 이수건, 『한국 중세 사회사 연구』(일조각, 1984)
- 박용운,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 연구』(일지사, 1990)
- 김광철, 『고려 후기 세족층 연구』(동아대출판부, 1991)
논문
- 민현구, 「민지와 이제현: 이제현 소찬 「민지 묘지명」의 소개 검토를 중심으로」(『두계이병도박사구순기념한국사학논총』, 지식산업사, 1987)
- 민현구, 「민지」(『한국사시민강좌』 19, 일조각, 1996)
- 변동명, 「정가신과 민지의 사서 편찬 활동과 그 경향」(『역사학보』 130, 역사학회, 1991)
- 이창국, 「원 간섭기 민지의 현실 인식: 불교 기록을 중심으로」(『민족문화논총』 24,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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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 초시와 복시가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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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나라의 시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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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고려 시대에, 각문(閣門)에 속한 정칠품 벼슬. 문종 때에 두었다가 신종이 참상(參上)으로 올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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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고려ㆍ조선 시대에 둔, 전중시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삼품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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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외국에 나가 있던 사람이 자기 나라로 돌아오거나 돌아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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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마음에 품은 생각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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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간사한 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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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책 따위의 내용을 더 보태고 고쳐 펴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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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고려 시대의 학자(1262~1346). 초명은 영(永). 자는 제만(齊滿). 호는 국재(菊齋). 안향(安珦)의 문인(門人)으로 성리학 보급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주자사서집주(朱子四書集註)≫를 간행하였고 ≪은대집(銀臺集)≫ 20권을 주해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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