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입지(立之), 호는 운재(芸齋)이다. 서림 이씨의 시조이다. 할아버지는 정헌대부 중서문하평장사(正憲大夫中書門下平章事) 이천(李仟)이고, 아버지는 정순대부 성균관대사성(正順大夫成均館大司成) 이자원(李子蒝)이다. 외할아버지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김유선(金惟銑)이고, 부인은 첨의평리(僉議評理) 김희(金禧)의 딸이다.
1292년(충렬 18) 6월 국자시에 뽑혔고, 1294년 10월 과거에 급제하여 내시(內侍)에 들어거 흥신궁녹사(興信宮錄事)가 되었다. 내시(內侍)에 속하였다가 군부좌랑(軍簿佐郎)에 이르렀다.
1308년(충렬왕 34) 9월 전의겸관(典儀兼官)으로 왕의 생일에 다과를 내는 것이 미치지 못하여 은 1근을 징발당하였고, 10월에는 충렬왕을 경릉(慶陵)에 안장한 후 능을 봉하는 것을 불길하게 여겨 집의(執義)에서 물러났다. 1314년(충숙왕 1)에 서림공에 봉해져 서림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1321년(충숙 8) 하정사(賀正使)로 원나라에 파견되었으며, 같은달 밀직부사에 임명되었다. 그가 역임하였던 관직은 대사성·진현관제학(進賢館提學)·지제고(知制誥)·선부전서(選部典書)·전의령(典儀令), 정당문학(政堂文學)·첨의평리·예문관대제학·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등이었으며, 1338년(충숙 복위7)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의(文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