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덕재(德齋).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314년(충숙왕 1) 3월에 선부직랑(選部直郎)이 되었다. 안향(安珦)의 문인으로 1319년 6월에 총랑(摠郎)으로 있으면서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극력 주청하여 스승을 문묘(文廟)에 종사하게 하였다. 1326년에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이달중(李達中) 등을 발탁하였으며, 그 뒤 1339년 12월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 죽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작품으로 안동(安東)의 영호루(暎湖樓), 청주(淸州)의 공북루(拱北樓), 통천(通川)의 총석정(叢石亭)을 읊은 시가 있으며, 삼척팔경(三陟八景)의 하나인 「와수목교(臥水木橋)」와 평해(平海)의 경치를 읊은 「요곽장천여고리(繞郭長川如故里)」등의 시가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