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금성(錦城).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나유(羅裕)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혔으며, 17세에 원나라의 명령으로 금부(金符)를 띠고 상천호(上千戶)가 된 뒤 관군상만호(管軍上萬戶)에 임명되었다.
충렬왕 말기에 신호위호군(神虎衛護軍)이 되었으나 충선왕이 신법을 제정할 때 이에 반대하다가 면직된 뒤 10년이 지나서 검교상호군(檢校上護軍)이 되고, 상의평리(商議評理)에 올라 금성군(錦城君)에 봉하여졌다.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자 첨의참리(僉議參理)가 되었고, 그해에 죽었다. 일찍이 계림윤(雞林尹)을 지내고 합포(合浦: 지금의 마산)를 세 번이나 지켰는데, 그 때 청렴하고 부지런하여 칭송이 자자하였다.
특히, 용모가 크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일에 임하면 강개하여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물러나서도 정사와 민생의 괴로움에 항상 관심을 가졌다. 시호는 양절(良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