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김운래(金雲來). 평장사(平章事) 김태서(金台瑞)의 아들이며, 계림부원군 김혼(金渾)의 아버지이다.
성품이 장엄·정중하고 온화·관대하며, 지혜와 용기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담략(膽略)이 있어 거실에 있을 때도 항상 조삼(皁衫: 冠禮의 再加 때 입는 복장의 하나)을 입고 손님을 대하듯 했다 한다.
음관(蔭官)으로 출발하여 현직(顯職)을 역임하였다.
1231년 정주(靜州: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 분견장군(分遣將軍)이 되었는데, 그때 몽고군이 정주에 침입하자 힘써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구주(龜州: 지금의 평안북도 구성)에 가서 박서(朴犀)와 합세하여 성을 굳게 지켜 적을 물리쳤다.
1233년 대장군(大將軍)·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가 되었다. 1237년 전라도지휘사(全羅道指揮使)가 되어 담양·해양(海陽: 지금의 경상남도 사천) 등지를 휩쓸던 초적(草賊) 이연년(李延年) 형제를 나주에서 무찔러 평정하였다. 이 공으로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로 승진하였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김경손을 최우(崔瑀)에게 무고하였으나 거짓으로 밝혀져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전직되었다.
1249년 최항(崔沆)은 김경손이 인망을 얻고 있는 것을 시기하여 백령도에 귀양보냈다. 1251년 최항이 계모 대씨(大氏)를 죽이고 대씨의 전부(前夫)의 아들 오승적(吳承績)을 죽였는데, 김경손이 오승적의 인척이 된다 하여 사람을 배소에 보내어 바닷속에 던져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