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최항의 정적제거사건과 관련된 관리.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오승적은 마침 캄캄한 밤인데다가 조수가 퇴조하는 때에 운좋게 살아 나왔다. 오승적은 머리를 깎고 개골산(皆骨山)으로 숨어 들어가 있으면서 대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집종[家奴]이 밀성(密城)까지 와서 오승적에 관한 비밀을 누설했으므로 부사(副使) 이서(李舒)가 듣고 최항에게 밀고하였다. 최항이 대노해서 수하들을 시켜 오승적을 붙잡아 바다에 던져 죽이고 황보준창 등 6명을 목베었다.
오승적사건은 최항의 정적제거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그 파장은 대단히 컸다. 최항은 대씨를 섬으로 유배보냈다가 독약을 먹여 죽이고 그녀의 족당(族黨)과 노비 70여 명을 죽이거나 유배보냈다. 아울러 오승적의 사돈인 대장군(大將軍) 김경손(金慶孫)이 여러 번 큰 공을 세워 민심을 얻고 있음을 꺼려 그를 바다에 던져 죽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 『고려 무인정권기 연구』(황병성, 신서원, 1998)
- 「최씨집권기 정권의 기반과 정치운영」(오영선, 『역사와 현실』17,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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