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는 미상. 출신지는 계림(雞林: 경주). 성질이 관후하며 인품이 아름답고 예절이 있었다. 무재(武才)로 드러나 호군(護軍)이 되었다. 이인기가 중방(重房)의 여러 장수들이 세력을 믿고 협기를 부리는 것을 증오하여 그들에게 반항하고 욕설하였더니 여러 장수들이 충선왕에게 하소연하였다. 충선왕은 이인기가 옳은 것을 인정하였으나 장수들이 원나라 환관(宦官)의 당파라는 것을 고려하여 파면시켰다. 얼마 안가서 벼슬을 건너 뛰어 지언부사(知讞部事)로 임명되었고, 곧 판중문사(判中門事)에 올라 친충선왕파(親忠宣王派) 대신으로 활동하였다. 1316년(충숙왕 3)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