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출신지 미상. 최씨무신정권 말엽 야별초(夜別抄)로서 무신집권자 최의(崔竩)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 1258년(고종 45) 3월, 신의군(神義軍) 도령낭장(都領郎將) 박희실(朴希實)과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 별장(別將) 김준(金俊, 초명 金仁俊) 등이 최의(崔竩) 제거를 모의할 때 중랑장 이주(李柱), 별장 최양백(崔良伯)이 그 소식을 듣고 최의에게 몰래 알렸다. 이때 최의의 심복 유능(柳能)이 쪽지편지로 야별초지유 한종궤(韓宗軌)에게 일러 새벽에 이일휴(李日休) 등을 불러 군사를 정돈하여 김준을 쳐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이일휴는 최의 진영에서 믿을 수 있었던 야별초 무관이었으며 한종궤의 부하였을 개연성이 크다.
그런데 최의 진영의 진압계획이 김준 측에게 알려져 김준이 거사를 앞당겼다. 야별초지유 한종궤는 김준이 보낸 야별초지유 조문주(趙文柱)·오수산(吳壽山) 등에 의해 제거되었으며, 이일휴는 영공(令公: 崔竩)이 급히 찾는다고 속임수를 쓴 임연(林衍)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일휴가 제거됨으로써 최의 진영의 야별초는 모두 제압되었으며, 김준·유경 등에 의해 무오정변(戊午政變)이 성공하여 최씨무신정권이 종식되고 형식적인 왕정복고(王政復古)가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