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국자좨주, 상서좌복야, 한림학사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원종 때 병부·예부의 시랑(侍郞), 국자좨주(國子祭酒)를 역임하였다.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있다가 왕에게 글을 올려 퇴관할 것을 요청하였더니 왕이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로 벼슬을 올려 주어 치사(致仕)케 하였다. 이주는 성질이 온순하고 어질었으며 특히 글을 잘 지었고 편지 등의 글씨도 잘 썼다. 평생토록 생산(生産)에 힘쓰지 않았으므로 그 집에는 쌀 한 섬의 저축도 없었다고 한다. 1278년(충렬왕 4)에 7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 『고려 무인정권기 연구』(황병성, 신서원, 1998)
- 「최우정권하의 문한관: ‘능문’ ‘능리’의 인사 기준을 중심으로」(조인성, 『동아연구』6, 1985)
- 「고려의 문한관」(변태섭, 『김철준박사 화갑기념 사학논총』,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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