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양(平壤). 초명은 조후(趙珝). 자의도첨의사사(咨議都僉議司事) 조인규(趙仁規)의 아들이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도진령(都津令)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으므로 왕의 노여움을 사 하옥되었다가 얼마 뒤 석방되어 원윤(元尹)이 되었다. 1316년(충숙왕 3) 밀직부사 겸 대사헌과 예문관제학이 되었다.
그 뒤 밀직사·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찬성사·삼사사(三司使) 등을 역임한 뒤 1321년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가 되었다. 1324년 충숙왕과 심양왕(瀋陽王)과의 알력이 심하였는데, 이 때 심양왕의 편을 들었다가 충숙왕의 미움을 사 순군(巡軍)에 하옥되었다.
그리고 가산을 몰수당하고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그 뒤 원제(元帝)의 명으로 사면되었다. 시호는 문극(文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