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노비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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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홍승기의 고려시대의 노비제도에 관한 학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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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81년 홍승기의 고려시대의 노비제도에 관한 학술서.
개설

1981년 한국연구원에서 간행하였다. 1983년에는 『고려귀족사회(高麗貴族社會)와 노비(奴婢)』의 제명으로 수정 보완하여 일조각에서 간행하였다.

내용

먼저 노비를 사노비공노비로 구분하여, 사노비의 경우 주인의 호적에 올라 있으며, 소생의 이름과 나이, 전래의 변별, 노처(奴妻)와 비부(婢夫)의 양천이 파악되어 있음을 밝혔다. 또한 솔거노비외거노비로 구분하여, 재산소유권에 있어서 솔거노비의 경우는 법적인 형식에 지나지 않으나, 외거노비의 경우는 법적인 권리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독자적인 재산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파악하였다.

국가와 사노비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정로제(丁老制), 즉 60세 이전과 이후로 파악되어 있었고, 국가는 노비가 주인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 살해될 수 없도록 법으로 보호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노비는 주인에 대한 배반이 용납되지 않았으며, 구타 · 고문 · 상해 · 처분 등에 관한 권한은 주인이 갖고 있었다고 보았다.

공노비는 독자적인 일을 경영할 수 있고, 독립된 가정을 꾸릴 수 있으며, 재산에 대한 주체적인 권리가 인정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공노비는 공역노비 · 외거노비로 구분하고 있다. 공노비는 대부분 반역 · 적진 투항 · 이적 행위와 같은 중대한 범죄행위를 저질름으로써 발생하였으며, 특히 귀족층이 주요 보충신분층의 하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공노비는 정로제에 의해 60세가 되면 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어, 무기한적 부담을 져야 했던 사노비와 비교하여 부담의 차이를 밝히고 있다.

토지경작과의 관련에 유의해 노비의 사회적 · 경제적 지위와 구실을 검토, 사노비는 주인의 가전(家田)을, 공노비는 주로 조가전(朝家田)을 경작하였다고 하였다. 특히, 사노비 가운데 외거노비는 관리노비 · 농경노비 · 경영노비 등으로 나누고, 공노비의 외거노비도 대부분 토지경작에 참여하여 이들의 전반적인 경제적 여건은 일반 양인 전호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끝으로, 사노비의 시대적 추이를 중심으로 노비의 사회적 · 경제적 구실과 지위가 고려 후기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점을 검토하였다. 솔거노비의 주요 기능이 종래의 사령에서 농경으로 변화되어 가고, 외거노비 가운데도 농경노비와 경영노비가 증가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고려 후기, 특히 말기에 농경노비의 사회적 지위가 일반 양인쪽으로 상승되어 감을 추정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고려시대의 특성 및 지배계층의 성격, 그리고 농업생산의 실제를 구명하기 위한 기초작업의 하나로서, 노비 신분층에 대한 여러 가지 특징적인 면모를 밝히고 있다.

노비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 검토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노비를 소유주와의 깊은 관련 속에서 파악하고 사실을 설명하며,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고 있다. 사료 활용에 있어서는 종래의 정사류(正史類) 중심의 노비 관계 사료뿐만 아니라, 문집류 · 노비 관계 문서까지도 폭넓게 이용, 이 시대 노비제도연구에 있어서 매우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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