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7년(정종 2)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설치한 지방호족의 지휘 아래 있던 농민예비군이다.
후진(後晉)에 유학하던 중 거란의 포로가 되었던 최광윤(崔光胤)이 거란의 고려침략계획을 감지한 뒤 이를 고려조정에 알려옴으로써 설치하였으며, 그 수는 약 30만에 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광군은 상비군이라기보다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도록 편성한 예비군의 성격을 가졌던 것으로, 대부분 농민출신이었고, 중앙과 지방호족과의 공동지배 아래 조직된 지방군이었다.
지방에 관리를 파견한 것이 983년(성종 2) 이후인 것으로 미루어볼 때, 광군의 지휘통솔 역시 중앙정부에서 직접 관장한 것이 아니라, 지방호족의 징발에 의하여 조직되고, 그 지휘권이 호족에게 속했던 것 같다.
즉, 광군의 관장기관인 광군사(光軍司)는 전국의 광군조직을 통제하기 위한 통수부로서 개경에 설치되었으며, 지방의 실권자인 호족을 통하여 운영된 듯하다. 그뒤 지방제도의 재정비시기인 1012년(현종 3)부터 1018년(현종 9) 사이에, 광군은 주현군 가운데 일품군으로 개편되면서 중앙의 직접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광군사가 이를 관장하였다.
따라서, 광군은 고려 전기 중앙집권화 과정의 한 예로서, 호족의 군대가 광군을 거쳐 지방의 주현군으로 개편되는 과도기에 존재했던 지방군으로 볼 수 있다. →광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