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순(子順). 한수(韓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개국공신 한상경(韓尙敬)이고, 아버지는 함길도관찰출척사 한혜(韓惠)이며, 어머니는 성달생(成達生)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진사시에 합격하고, 1447년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에 보임되었다가 곧 집현전정자로 뽑혔다. 이어 부수찬·지제교로서 경연관(經筵官)을 겸하고 부교리에 이르렀다. 세조가 즉위한 뒤로 신임을 두터이 받아서 1455년(세조 1) 우문학으로 세자에게 경학을 가르쳤다.
이듬해 좌필선·집의, 1457년 예문관직제학·지제교 겸 춘추관기주관으로 문한의 직을 역임한 뒤 세자우보덕(世子右輔德)을 겸하였다. 1458년 좌보덕·병조지사(兵曹知事)·참의, 1460년 우승지, 1461년 좌승지·공조참판·중추원부사, 1462년 이조참판으로서 세자우부빈객(世子右副賓客)을 겸하였다.
이듬해 인순부윤(仁順府尹)을 거쳐 1465년 이조판서, 1467년 중추부사가 되었다. 1468년 세조가 병환이 심할 때 약을 조제하는 임무를 맡았고, 죽기 전날에는 세조의 지시로 대보(大寶: 임금의 인장)와 곤면(袞冕: 임금의 정복)을 세자에게 전수하는 일을 주관하였다.
1469년 예종이 즉위하자 남이(南怡)를 제거한 공으로 추충정난익대공신(推忠定難翼戴功臣) 3등에 책록되고, 서원군(西平君)에 봉해졌다. 이듬 해 성종이 즉위해서는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하고, 1471년(성종 2) 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佐理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1478년 좌찬성에 이르렀다.
그의 집안은 조선 초기의 명문 거족으로서 벼슬길에 가문의 배경이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세종 때 집현전 장서각(藏書閣)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박람강기(博覽强記)로 쌓은 학식이 큰 바탕이 되었다.
학식과 단정한 성품으로 주위로부터 추앙되어 존중히 여김을 받았으며, 특히 서거정(徐居正)과 교분이 두터웠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