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과 본관은 알 수 없다. 1359년(공민 8) 홍건적의 위평장(僞平章) 모거경(毛居敬)이 4만의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침범하였을 때 정공판서(典工判書)로서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1363년 11월 전공판서(典工判書)로서 기해격주홍적일등공신(己亥擊走紅賊一等功臣)에 녹훈되었다. 또한 1361년 홍건적 제2차 침입 당시 적이 압록강을 건너와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이 복주(福州, 지금의 안동시)로 남천(南遷)했을 때, 판내부시사(判內府寺事)로서 경성을 수복한 공으로 1363년 윤3월에 수복경성이등공신(收復京城二等功臣)에 수록되었다.
1364년 3월 전라도의 조운(漕運)이 왜적에 의해 막히자 경기좌도병마사(京畿左道兵馬使)로서 경기우도병마사 변광수(邊光秀)와 함께 전선 80여척을 동원하여 조운을 돕기 위하여 출발하였다. 도중에 대도(代島)에서 적의 계략에 빠져 적선 50여척에 포위되어 병마판관 이분손(李芬孫)과 중낭장 이화상(李和尙) 등 많은 병사와 배를 잃고 겨우 20척을 끌고 돌아왔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하여 처벌당하지는 않았다.
1366년 신돈(辛旽)에 의해 황상(黃裳)·이수산(李壽山)·한방신(韓方信) 등과 함께 금위제조관(禁衛提調官)에 임명되어 신돈의 개혁과 권력 장악에 조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