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준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에, 내시 위위주부, 좌상시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미상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내시 위위주부|좌상시
관련 사건
여진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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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 전기에, 내시 위위주부, 좌상시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강영준(康英俊)은 내시 위위주부(內侍衛尉主簿, 종7품)로서 1108년(예종 3) 2월 여진정벌에 성공한 윤관(尹瓘) 등을 포상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이때 강영준은 윤관·오연총(吳延寵)에게 양과 술을 하사했을 뿐만 아니라 군인들에게도 은사라(銀鐁鑼) 1개와 은병(銀甁) 40개를 나눠주었다. 이 때 강영준이 내시 소속이었던 점으로 미뤄 보면, 과거에 합격하여 국왕의 곁에서 활동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1139년(인종 17) 11월에 좌상시(左常侍)로서 10여 가지 일에 대한 상소를 올렸는데, 그 중에서 전 추밀원사(樞密院使) 최유적(崔惟迪)과 승려 의장(義莊: 인주이씨 李子淵의 증손자) 등을 다시 본주(本州)로 유배하는 것만 허락하였다고 한다.

강영준이 최유적과 의장을 탄핵한 것은 그들이 국가에 반역한 이자겸(李資謙)과 연관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면 강영준은 예종∼인종대 왕실의 외척세력과 대립했던 문신으로서 국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측근세력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 예종대 정치세력 연구』(김병인, 경인문화사, 2003)
「고려 전기 내시와 국정운영」(이정훈, 『한국사연구』139, 2007)
「고려전기 내시의 구성과 역할」(김보광, 『한국사학보』13, 2002)
「인종대 정치세력의 변동과 정책의 성격」(오영선, 『역사와 현실』9, 1993)
「고려 인종대 정치지배세력의 성분과 동향」(남인국, 『역사교육논집』15,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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