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강영준(康英俊)은 내시 위위주부(內侍衛尉主簿, 종7품)로서 1108년(예종 3) 2월 여진정벌에 성공한 윤관(尹瓘) 등을 포상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이때 강영준은 윤관·오연총(吳延寵)에게 양과 술을 하사했을 뿐만 아니라 군인들에게도 은사라(銀鐁鑼) 1개와 은병(銀甁) 40개를 나눠주었다. 이 때 강영준이 내시 소속이었던 점으로 미뤄 보면, 과거에 합격하여 국왕의 곁에서 활동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1139년(인종 17) 11월에 좌상시(左常侍)로서 10여 가지 일에 대한 상소를 올렸는데, 그 중에서 전 추밀원사(樞密院使) 최유적(崔惟迪)과 승려 의장(義莊: 인주이씨 李子淵의 증손자) 등을 다시 본주(本州)로 유배하는 것만 허락하였다고 한다.
강영준이 최유적과 의장을 탄핵한 것은 그들이 국가에 반역한 이자겸(李資謙)과 연관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면 강영준은 예종∼인종대 왕실의 외척세력과 대립했던 문신으로서 국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측근세력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