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일설에 의하면, 발해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제15대 대인선(大諲譔)의 왕자 대광현(大光顯)의 아들이거나 손자라고 한다. 협계태씨(陜溪太氏)·영순태씨(永順太氏)·밀양대씨(密陽大氏) 족보에서는 대광현의 아들로 되어 있다. 대도수의 아들은 대형인(大亨仁)이며, 손자는 대홍윤(大洪允)이라고 전한다.
대도수는 거란의 침입 때 지휘관으로서 활약하였다. 993년(성종 12) 10월 거란 장수 소손녕(蕭遜寧)이 고려의 항복을 종용하면서 안융진(安戎鎭)을 공격하여 청천강 이남으로 진격하고자 했다. 이때 중랑장(中郞將) 대도수는 낭장 유방(庾方)과 더불어 안융진전투에서 승리하여 거란 군사의 전진을 차단하였다. 이는 곧 서희와 소손녕의 외교담판에서 고려의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던 계기로 작용하였다.
거란 성종이 친정(親征)하였던 제2차 침입(1010∼1011, 현종 1∼2) 때 대도수는 장군(將軍)의 반열에 올랐다. 1010년 12월 대도수는 서경성을 사이에 두고 거란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때 장군 대도수는 동·서의 성문을 열고 나가 거란군을 협공하자고 속이면서 몰래 홀로 도주하였던 탁사정(卓思政)의 간계에 넘어가 중과부적으로 거란군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